▶ 남수단 내전 소년병 두옵 이야기-아홉 살에 정부군 민병대·반군 전전하다 귀환
▶ 청각 잃었는데 환청 들려 조약돌로 귀 틀어막아…생환의 기쁨도 잠시 가족들에 걱정거리 취급도
남수단 벤티유 난민촌에 도착한 두옵을 그의 가족과 이웃들이 반기고 있다. [Tyler Hicks/뉴욕타임스]
비행기에서 내리는 소년의 두 귀에는 조그만 조약돌이 끼워져 있었다. 짐 가방은 없었고 바지는 더러웠다. 몸집은 어른인데 그의 눈에는 어린 아이의 혼란스러움이 짙게 서려 있었다. 남수단 출신의 소년은 민병대에 징집됐다가 정부군에 생포돼 심한 고문을 받았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무자비한 주먹질과 발길질, 채찍질이 가해졌고 때로는 고문 담당자가 군화발로 그의 배위에 올라가 겅중겅중 뛰기도 했다.
고문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머리는 늘 욱신거렸고 조그만 소음에도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유니세프에 의해 구조된 후에도 그는 한사코 귀마개 착용을 거부했다. 아마도 모든 기구가 고문도구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악몽 같았던 6년의 시간을 보낸 그가 드디어 귀향길에 올랐다. 유니세프 트럭 짐칸에 설치된 긴 의자에 걸터앉은 그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두옵, 내 말 들려? 지금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야.” 유니세프 요원의 말에 소년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간이 차창 밖을 응시했다. 험한 비포장 도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더 이상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세계의 막동이 국가인 남 수단은 처음부터 엇길로 나갔다. 남 수단은 특히 아이들이 살기에 적합한 국가가 아니었다. 2011년 뜨거운 기대와 떠들썩한 환호 속에 수단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이뤘지만 곧바로 종족 분쟁에 휘말려 들면서 학교가 불타고, 가정이 찢어져나갔다.
수 만 명의 어린이들은 전장의 총알받이로 내몰렸고 이들 중 상당수가 팔다리를 잃고 불구가 됐다. 잔인하게 살해된 아이들의 수 역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현재 남 수단은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기아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2011년 소말리아 기근 당시 기아로 숨진 25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다섯 살 미만의 코흘리개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이렇게 썼다. “평화시대에는 아이가 그들의 부모를 매장하지만 전시에는 부모가 그들의 자녀를 묻는다.”
남 수단의 내전상황은 현재로선 끝을 내다보기 힘들다. 설사 전쟁이 끝난다 해도 이미 생긴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이다.
두옵은 16세 언저리다. 큰 손과 가느다란 손목, 빡빡 깍은 머리에 동그란 턱, 갸름한 얼굴을 지녔다.
소년은 남 수단 북부도시인 벤티우의 인근 촌락에 거주하는 누에르족 출신이다. 그의 고향은 비교적 편평한 초원에 가시덤불과 큰 코끼리 부들이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곳이다. 남 수단의 더위는 끔찍하다. 오전 9시 경에는 수은주가 세 자릿수로 치솟는다. 정오의 기온은 화씨 110도.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강한 햇빛은 무자비하고 묵직하며 머릿속을 멍하게 만든다.
두옵은 1만여 명에 달하는 남수단의 소년병 중 한명이었다. 유니세프 관리들에 따르면 반군과 정부군 모두 소년병을 동원한다. 국제법상 갓 열 살을 넘긴 아이들에게 총을 쥐어줘 전장으로 내모는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소년병으로 두옵이 겪은 경험을 완전히 복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의 가족은 정부군이 두옵의 머리를 반복적으로 때리고 얼굴에 발길질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각과 언어능력을 상당부분 상실했다.
환청도 듣는다. 두옵이 조그만 돌로 귀를 틀어막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것으로 보인다. 유니세프 직원들은 단단한 껍질 속에 갇힌 그의 의식을 현실세계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홀로 있을 때 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거나 허공을 노려본다.
두옵은 아홉 살 무렵에 집을 떠나 반란군 민병대에 가담했고 이후 정부군에 합류했다가 다시 반군으로 진영을 옮긴 후 체포돼 심한 고문을 받고 버려졌다. 이 모두가 17번째 생일 이전에 생긴 일들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생일이 언제인지 정확히 모른다.
두옵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남 수단 유니세프 사무실에는 부모와 헤어진 어린이 수 천 명의 명단이 담긴 데이터베이스가 있는데 여기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옵은 지난 12월 남수단 수도인 주바의 군기지 인근에서 한 촌로에 위해 발견됐다. 당시 그는 심한 부상을 입은 채 기지 주변을 방황하고 있었다. 촌로는 그를 인근 난민 캠프로 데려갔고, 유니세프는 그의 신원파악에 착수했다.
두옵은 몇 주간 입을 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미소에 화답하는 표정을 지어보였고 총을 보면 인상을 찌프렸다.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근거로 두옵의 어머니 소재지를 파악한 유니세프 직원들은 12만 명을 수용중인 벤티우 난민촌에서 6년만의 모자상봉을 주선하기로 했다. 난민촌의 약속장소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엄마는 트럭에서 내리는 두옵을 보며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누에르족의 정화의식에 따라 염소의 목을 따서 피를 땅에 뿌린 뒤에야 비로소 엄마는 아들을 포옹할 수 있었다.
난민촌 사람들은 대부분 누에르족이다. 반면 남수단 정부, 그중에서도 특히 군부는 딘카족이 장악하고 있다. 남수단이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후 2년 뒤인 2013년 발생한 싸움은 누에르족과 딘카족 사이의 권력다툼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다른 종족들이 속속 싸움판에 끼어들면서 전국규모의 내전으로 확전됐고 결국 남수단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옵의 귀환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친척들이 줄이어 난민촌으로 찾아왔다. 이들은 노래와 춤으로 그의 생환을 축하했지만 두옵은 시종 무표정이었다. 친척들은 그의 손과 귀를 만지고, 팔을 주물러주며 덕담을 건넸지만 뒷전으로 물러서기 무섭게 서로 귓속말을 나누었다. 내용은 한결같았다.
“저 아이가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지, 앞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지”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가족들은 두옵이 사지에서 생환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숙모는 사족을 달았다. “쟤는 이전의 두옵이 아니야. 완전히 병신이 되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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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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