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PC)는 인간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1990년대 인터넷은 정보의 장벽을 허물며 세상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2000년대 휴대전화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앴고, 2010년대 스마트폰은 세상을 손안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기술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AI는 문서 작성과 데이터 분석, 이미지 생성,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인간의 지식 노동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며칠 걸리던 일이 몇 분 만에 끝나고, 전문가만 할 수 있던 작업이 누구에게나 열리고 있다. 분명 AI는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혁명의 역사는 언제나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지만 수많은 수공업자를 실업자로 만들었다. 전기의 보급은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켰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켰다. 인터넷은 정보 혁명을 이끌었지만 기존 언론과 유통산업의 질서를 뒤흔들었다.
최근 경제학자들은 AI가 가져올 생산성 혁명에 주목하면서도 새로운 양극화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MIT의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는 기술혁신이 노동시장의 중간층 일자리를 잠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AI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자동화가 육체노동을 대체했다면, AI는 사무직과 전문직의 일부 영역까지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충격은 사회 진입을 앞둔 청년층에게 먼저 나타나고 있다.
AI를 활용하는 소수의 숙련 인력이 여러 명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채용시장은 점차 경력직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기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MZ세대가 역설적으로 AI발 고용 절벽에 직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MIT의 경제학자 대런 애스모글루 역시 AI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기술의 이익이 노동자보다 자본 보유자와 거대 기술기업에 집중될 경우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현재 AI 산업은 막대한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을 보유한 소수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반면 낙관론도 존재한다. 스탠퍼드대의 에릭 브린욜프슨은 AI가 생산성을 민주화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전문가만 가능했던 업무를 일반인도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특히 숙련도가 낮은 근로자일수록 더 큰 생산성 향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결국 AI가 불평등을 확대할 것인지, 새로운 기회의 사다리가 될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AI를 활용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격차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개념이 ‘K자 성장’이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모두가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상승하고 일부는 하락하는 현상을 뜻한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AI를 적극 활용하는 기업과 개인은 더 높은 생산성과 소득을 얻는 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계층과 청년들은 뒤처질 위험에 놓여 있다.
기술 발전을 막을 수는 없다. 산업혁명도, 인터넷 혁명도 결국 인류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AI 역시 의료와 교육, 과학기술 분야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새로운 신분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가 시급하다. 첫째, 누구나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프롬프트 활용 능력과 데이터 리터러시를 포함한 실무 중심의 AI 교육을 학교와 직업훈련 체계 전반에 도입해야 한다. 둘째, AI로 인해 발생하는 부의 편중을 완화할 사회안전망에 대한 진지한 논의다. 기본소득과 AI세, 로봇세 등 다양한 정책적 대안은 더 이상 공상적 아이디어가 아니라 미래 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현실적 의제가 되고 있다.
AI 혁명의 진정한 성공은 더 똑똑한 기계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더 많은 사람이 그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AI는 지금 우리에게 거대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눈부신 혁신의 빛이 깊은 양극화의 그림자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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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부국장대우ㆍ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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