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고
▶ 크리스 포먼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한국말을 배울 적에 제일 먼저 배운 말이 "많이많이 공부해요"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어떤 때는 질문으로 쓰이지만, 대개 명령문으로 쓰인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말을 못하는 한국인 자녀들도 "공부해" 하는 소리는 안다. 내가 알고 있는 보스턴에서 온 한국계 학생이 이러한 고백을 하였다. "공부해라" "빨리 공부해라" 하는 어머니의 말이 집을 떠나왔지만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고 고백을 하였다. 한국 사람들이 공부에 얼마나 얽매어 있는가를 이 한마디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첫발을 딛은 날부터 나는 한국식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봉사단 동료들과 함께 한달 동안 언어연수를 받았다. 한국말 선생님이 한국말 문장을 먼저 읽으면 우리들은 따라서 읽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되풀이하였다. 다음날도, 다음주도 똑같은 반복이었다. 단어의 뜻도 모른 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앵무새처럼 따라 읽으면서 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한국 사람들의 공부열은 대단하였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교 근처에 일하던 회사원, 학교 선생들, 심지어는 하숙집 아주머니까지 영어회화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였다. 학생들이 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많은 학생들이 영어 교과서를 열심히 외었다. 정말로 많이많이 공부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한인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엄마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공부하라"는 말일 것이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큰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루에도 나는 몇번씩 들었다. 아내가 아이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공부해요" 라고 말하였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아들이 자라는 동안 아내는 아들 귀에다 대고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하고 속삭였다.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요즈음 다시 접하고 있다. 지금 나는 침례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학생수의 3분의1이 한국 학생이다. 한국 학생들의 뜨거운 교육열은 감동 받을 만하다. 서툰 영어로 애를 쓰면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려는 한국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에게 향한 존경심이 깊어진다. 왜냐하면 신학대학원 클래스가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가를 도서관에 가보면 안다. 밤이고 낮이고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는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이다. 이처럼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이제 갓 미국에 도착한 학생도 영어가 서투르면서도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책을 한두 번 읽는 것이 아니라 열 번도 더 읽고 심지어는 외우다 시피하며 공부한다고 한다.
이번 여름 한인들과 함께 아프리카 선교 준비하면서 르완다 말을 공부하고 있다. 1972년에 한국말을 배울 때 말의 뜻도 모르면서 선생님을 따라서 큰소리로 읽던 기억이 요즘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말이 아니라 르완다 말이다. 문장 뜻을 모른 채 한인 선생이 르완다 말을 읽으면 앵무새처럼 흉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하, 반복하며 연습하는 것이 한국 재래식 교수법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에게 실례가 되지 않으려고 입을 열어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외우는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예전에도 지금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인 것 같다. 1890년에 프랭크 카펜터가 쓴 ‘아시아 지리’라는 책에서 미국사람의 눈에 비친 한국의 서당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학생들이 돗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큰소리로 책을 읽었다. 학생들이 몸을 앞으로 뒤로 흔들면서 글을 노래 부르듯이 동시에 큰소리로 읽었다. 한 아이가 소리내기를 중단하면, 선생은 그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회초리로 때렸다."
위의 정경이 르완다 말을 배우고 있는 우리 그룹과 별로 다름이 없다. 111년이 지났는데도 어떤 전통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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