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한국인’ ‘신기한 한국인’을 설명하라고 하면 나는 88년 서울올림픽 때 보여준 소매치기들의 결의를 예로 들고 싶다.
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이 처음 치르는 최대 규모의 국제적인 스포츠행사 였다. 관광객들이 세계에서 몰려 들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 조직위가 은근히 걱정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소매치기다. 올림픽참가 선수들이나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다 소매치기를 당해 돈을 몽땅 잃어버린다면 ‘코리아’에 대한 인상이 좋을리가 없다. 올림픽 조직위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 알리기 운동에 먹칠을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와같은 조직위의 우려가 신문에 보도되자 상상을 불허하는 일이 일어났다.
소매치기 회의가 열린 것이다. 서울 소매치기단 고참과 인천 소매치기단 고참들이 비밀리에 모여 “올림픽기간 동안에는 소매치기를 하지 말자”고 결의했다. 소매치기들의 이 각성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88서울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외국인에 대한 소매치기 사건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못 믿겠거든 신문기록을 체크하시기 바란다. 이것이 88서울올림픽 소매치기 휴전선언 해프닝이다. 소매치기들이 ‘한다면 한다’를 보여준 셈이다.
로마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면 소매치기들이 양심선언을 할까.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국에서만 가능한 사건이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알 수 없는 한국인’ ‘신기한 한국인’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
한국인의 이와같은 신통한 기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재작년 한국민속학자인 홍일식 박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고대총장을 지낸 홍박사는 명예교수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물었다. 한국인도 놀라는 한국인의 기질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그랬더니 홍교수는 한국인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했다.
“88올림픽 때 서울시민이 보여준 질서의식은 대단했습니다. 경기 관람객들이 쓰레기까지 다 담아서 가지고 나갔어요. 외국 매스컴에 한국인을 칭찬하는 기사가 여러건 실렸었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직후 서울대공원에서 수만명이 모인 대회가 있었어요. 집회가 끝난 후 주최측에서 마이크로 쓰레기 담아갈 것을 참석자들에게 사정했지만 들은 척도 않는 겁니다. 온통 쓰레기 천지얘요. 며칠전의 그 ‘한국인’들이 아니얘요. 딴 사람입니다.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그날 행사에 참가한 높은 사람들에게 호화스런 특별석이 꾸며지는 등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았죠. 그래서 시민들 기분이 상한 겁니다”
그럼 어느 것이 한국인의 기질인가. 은어냐 도루묵이냐고 물었더니 홍교수는 한국인은 기분에 따라 은어도 되고 도루묵도 되는 기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은 칭찬해주면 신들리고 한번 신이 들이면 평소에 볼 수 없는 잠재능력을 발휘하는 기질을 지녔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데 코리언인 우리도 깜짝 깜짝 놀라는 일들이 많다. 예상 외의 축구실력도 실력이지만 응원은 세계적 화제다. 독일의 어느 스포츠지 기자는 월드컵 취재만 세번째인데 시민들의 질서의식이 이렇게 모범적인 것을 본 일이 없다며 유럽인들은 한국을 견학해야 한다고 극구 칭찬했다.
남들이 너무 칭찬하니까 “우리가 정말 그렇게 질서의식이 있는 민족인가” 싶어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부정부패를 설명하기가 난감하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한국인은 한번 신들리면 자기도 놀라는 잠재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폴란드에 이긴 것도, 미국과 비긴 것도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능력발휘다.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코리언의 재발견-이것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민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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