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때 본국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
독립운동가였던 선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7년여 세월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였던 하와이 한인 후손이 드디어 올해 광복절을 기해 한국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상’을 선친의 영정에 바치게 되었다.화제의 주인공은 카할라에 거주하는 김연자(59)씨로 김씨는 독립운동사와 국가 보훈처간 독립운동유공자 공훈록에 이름만 올라있을 뿐 한국정부는 물론 후세들로부터 잊혀진 독립운동가인 선친 ‘김기헌’씨의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 7년간 선친의 독립운동 근거 자료를 찾기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자료를 찾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홀대에 분개하면서도 자식의 도리를 다하자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는 김씨는 올해 드디어 남동생(김일진씨)이 살고있는 부산에서 열린 광복절기념식장에서 생사도 알 수 없는 선친을 대신해 한국정부가 수여하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동안 마음고생은 물론 경제적인 지출도 만만치 않았어요. 그동안 힘들고 섭섭한 일도 많았지만 이제 조국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신 선친에게 자식으로서 할 도리는 다 했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자신의 외로운 투쟁에 도움을 준 본보와 한국본사 관계기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28일 본보를 방문한 김씨는 "95년부터 시작한 이 일이 성사되기까지는 무엇보다 언론사의 도움이 컸다"고 전한다. 특히 "얼마전 라디오를 통해 납북자 명단에 부친의 성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선친 명예회복에 결정적인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며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자신을 격려해 준 지원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씨의 선친 독립운동가 김기헌씨는 원산에서 교사로 근무하던중 1919년 3월1일 독립운동 33인의 한사람인 정춘수씨와 원산 3.1운동 한사람으로 피검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복역을 시작으로 1931년 조선인 차가동맹사건과 1934년 함남 흥원 농민조합원 항쟁사건에 연루되어 1년, 5년간 각각 옥살이를 했고 그 재판기록도 수백장이나 된다고 한다. 해방이 되어서는 공산당의 입당거절로 고초를 겪었고 1945년 11월 월남이후에는 반공운동을 벌이다 6.25때 납북 되었다고 한다.
<신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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