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 종전 50년...
▶ 한국전 참전용사 마크 벨씨
"전쟁과 관련한 많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전쟁의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공포 그 자체일 뿐입니다"
1951년 22살의 젋은 나이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병사 마크 벨. 그는 올해 74세로 산타클라라에서 살고있다.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아픈 기억이 있다.
‘한국전, 6.25’
마크 벨씨는 1951년 1월, 16주간의 보병훈련을 마치고 한국전 투입을 위해 그 해 7월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한국 도착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첫 여름을 맞았다"며 "7월 한국의 뜨거운 햇볕에 병사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마크 벨씨는 그 해 9월 20일 3.8선 부근에서 북한군과 대규모 전투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부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상부로부터 하달 받고 북한군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새벽1시경 조명탄을 터뜨리자 북한군들이 언덕 위로 새카맣게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고 전투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서 "바로 옆에서 조금 전 까지 담배를 나누어 피던 전우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여기저기에서 살려 달라는 아우성이 들려 왔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바로 옆에 물을 마시려고 노아 두었던 수통에 총알 구멍이 뚫려 물이 내 게로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곁에서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그 당시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크 벨씨는 한국 전쟁 중 가졌던 유일한 희망은 "살아서 고향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을 만나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에서 머리와 허벅지에 2번의 총상을 입었다.
"나는 총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살아있다"며 "그러나 전쟁터에서 내 품안에서 죽어가던 전우들, 20대를 갓 넘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한국의 어느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아파 온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전에서 미군 병사 3만7천명이 전사했으며 8천3백명이 실종됐다.
마크 벨씨는 "한국전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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