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그란 저택, 길고 넓게 뻗은 층계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여인은 전선에서 온 남편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 그리운 내 사랑, 며칠후면 곧 당신을 보게된다오", 여인의 조그만 어께는 떠는듯하고 다른 한손에는 남편의 전사 통지서가 쥐어 있었다. 옛날에 보았던 Simaron 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내가 아는 어느 여인은 남편의 편지를 그의 전사 소식후에 받고, 평생 남편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주둔 미8군 영내에는 영구 주둔하는 여인 두명이 있었다. 6.25사변 정전후 곧 바로 남편과 약혼자의 행방불명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달려온 여인들이다. 어디엔가 살아있을 것만 같아 애인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려온지 20여년, 유해라도 찿아가고 싶어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3 살박이 딸 아이는 앉은 뱅이가 되어 감옥에 앉아있는 아빠가 못내 이상한지 자꾸만 아빠더러 화장실 가자고 보채더라며 덧니를 보이며 웃는 모습이 차라리 우는것보다 더 가슴이 메어졌다. 남편은 18세에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걸을수 없게되고 착란증이 심해지더니 끝내 살인미수로 복역하는 중이었다.
월남의 평화로운 마을들을 가로 지르며 기차는 곡식이 무르익는 평야를 지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위에 쪽배를 젖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부드러운 미풍을 온 몸으로 받으며 여인은 남편이 옆에 함께 있는듯 착각한다. 남편의 부상 소식과 함께 전화 저쪽에서 군의관은 하나님께 어서 데려가 고통을 벗어나게 해달라 기도하라고 잠잠히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했었다. 그것이 오직 위로의 말이었다. 젊디 젊은 남편을 왜 이런 이역만리로 끌고와서 죽게했는가? 왜 이 아름다운 강산이 아시안 오렌지 연기에 타 죽어갔는가?
유복자는 묻는다. 왜 내 아빠가 나도 않보고 죽었냐고,
미군 폭격기 조종사의 미망인은 오열한다. 아름다운 산하를 폭탄투하로 불바다로 만들어 놓았던 내 남편은 명령에 쫓았으나 살인자이다. 왜? 정당화할 변명이 없는 것이다.
남편이 전사한 그 장소에 오래동안 와보고 싶었으나 두려움이 앞을 막았었다. 안내자는 베트공 두목이었노라 거침없이 밝힌다. 그 옆 모습을 훔쳐보며 여인은 내 남편을 죽인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나 무서웠을가? 홀로 이국에서 죽어 가는것이, 얼마나 외로웠을가?
딸이 매춘부가 되는 것을 지켜만 보았었다는, 자기도 매춘부 였었다는 한 월남여인은 말한다. "겉은 이렇게 멀쩡하여도 가슴속 깊이 박힌 상처의 아픔을 울수도 없습니다. 내 이웃들은 아들을 잃고 남편을 잃었는데, 그 앞에서 내가 감히 어떻게 울겠읍니가? 어떻게 내 슬픔을 그들의 아픔에 비하겠읍니가?
워싱톤의 전몰용사 기념비에 새겨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찿아 더듬는 여인 옆에서 또 한 여인은 흐느껴 운다. "내 아들의 이름도 여기 새겨 있어 만져 볼수라도 있었으면----",
여인의 아들은 전쟁 후유증으로 7년간 고생하다가 자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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