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근 교수의 정치이야기]
▶ 조경근<스탠포드 방문학자>
러시아의 대문호 토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가진 꿈 가운데 가장 허망한 것이 ‘황금시대’에 대한 꿈이라고 했다. 여기서의 황금시대는 물질적 풍요만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모든 것이 갖춰진 이상사회를 가리킨다.
여전히 설득력이 높은 정치, 사회이론의 하나가 ‘지배계급(엘리트)이론’이다. 모든 인간사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국 이끌어 가는 소수 지배계급과 지배받는 다수 대중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학자 간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지배계급이란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있는 사회의 최 상층부를 말한다.
좀 우스운 예지만, 서민이 주식 투자에서 돈버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반면 최 상층부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주식 투자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관건의 하나가 정보력이다. 우리네 서민들은 어떤 새 기술과 상품이 개발 중인지 그것이 성공할 확률과 시장에 내놓을 시기는 언제인지 등의 회사 사정이나, 향후 경제의 어떤 부문에 집중 투자가 이루어질지 어떤 기업의 퇴출이 긴밀히 논의되고 있는지 등의 정부정책 방향 같은 것을 사전에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최 상층부 내에는 이런 정보가 나누어지는 각종 공식, 비공식의 만남과 통로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민들이 평생 모은 돈을 주식에 갖다 부을 때,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참으면서 쌈지 돈을 투자했을 때, 결국 그 돈의 대부분은 최 상층부의 주머니로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아니면 그냥 공중에 날리게 되는 것이다.
IMF가 한창일 때, 은행이자율이 연 20%에 육박했고, 억 단위의 돈을 예금하는 고객에게는 몇 % 금리를 더 얹어 주기도 했다. 그 당시 큰 부자들은 은행에 현금을 몇 달만 넣어두는 것으로 웬만한 월급쟁이 몇 년 치 봉급을 손쉽게 벌어들였다. 그들은 또한 헐값으로 곤두박질한 아파트와 부동산을 사들임으로써 지금 내다 팔면 수억, 수십억의 수입을 앉아서 거둬들이게 되었다. 요즘 모두가 느끼는 한국사회의 부의 커다란 격차가 그래저래 만들어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결코 누구 말처럼 철없는 20대 아이들의 장난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 종일 택시를 몰아봤자 자식 학비와 시집장가 보낼 걱정을 평생 덜 수 없는 기사들이, 봉급명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집 장만 외의 꿈은 가질 수 없는 월급쟁이들이,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리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누라와 자식 얼굴 보기보다는 한 숨이라도 더 잤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은 우리 시대의 군상(群像)들이 미친척하고 ‘서민시대의 꿈’을 향해 몸부림친 그 몸부림의 결과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등장한 노무현 정부가 이제 겨우 6개월이 지났는데, 임기 말 인양 힘들다. 아직도 그를 지지했던 많은 수가 ‘서민 대통령’이 잘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지만, 다른 많은 수는 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큰 기업들의 노사투쟁에 대한 얘기 가운데 우스운 것이 어중간한 직책의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회사가 조장, 대리 등등의 사원들을 호텔 식당에 불러다 전채와 후식이 곁들여진 양식을 사주면서, "여러분은 노동자가 아니고 우리 회사의 책임 있는 중추적 인재들입니다"라고 부추기면 대부분 자신들이 정말 그런 위치에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노동자 편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사실은 서민이고 최상층의 지배 속에 살면서도 쉽게 지배집단의 조작된 논리에 휘말리는 현상이 그것이다. 노 정부 사람들 가운데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다못해 몇 명되지 않는 자기 집 자식도 나 몰래 나쁜 짓 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몇 명에게 문제가 생겼다 해서 노 정부 전체를 매도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노 정부의 중심이 초심(初心)대로 똑바로 가고 있느냐에 있다. 그 몇 명의 모자란 친구들을 가지고 노 정부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우리 같은 서민들을 위해 한 번 잘 해보겠다는 정부를, 지배계급의 조작된 논리에 함몰되어 스스로 매도하는 잘못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노 정부의 사람들도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서민정부’는 역사에서 예외적 현상이다. 그런 만큼 권력이 늘 자기들 것이라 생각하는 지배계급의 공격은 당연한 현실이다. 근본 타결 책은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을 늘 목에 걸고 처음 그 꿈을 향해 올곧게 매진하는 그것이다. 그래야, 유일한 버팀목의 결정적 부분인 ‘쉽게 착각하는 서민’들의 방황과 반목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토스토예프스키는 황금시대의 꿈이 인간의 가장 헛된 소망이긴 하지만, 그 꿈이 없었다면 인간은 살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결코 이룰 수 없음에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바보처럼 쫓아가는 그 노력이 역사를 진보시키는 것이다.
노 정부의 탄생 뒤에 숨은 서민들의 이 허망한 ‘꿈’이 택시기사와 월급쟁이와 버스와 지하철 속 군상들의 삶에 진보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도록 스스로들 애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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