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 가깝게 지내던 언니네 가족이 얼마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실은 결혼 직후부터 추진했던 일인데, 그동안 일이 참 더디게 진행되어 두 사람이었던 식구가 8개월된 딸아이까지 세 식구가 되어 드디어 유학길에 오른것이다. 곧 떠나게 될 줄 알고 부부가 직장을 그만 둔 채 한 2년을 살았는데도 끝까지 남편을 신뢰하고 얼마되지 않는 저축해둔 돈으로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꾸리면서도 언제나 밝은 언니의 모습은 내게 참 많은 도전이 되었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언니네 남편이 먼저 독일로 출국하고 언니와 딸아이는 서울 친정에 잠시 머무르며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남편이 어서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히 한 달만에 걱정했던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어 언니도 부랴부랴 출국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다. 출국을 며칠 앞 둔 어느날, 부산에 계신 시댁 어른들께서 이제 먼 곳으로 떠나는 며느리와 손주를 보기 위해 서울에 한번 올라가시겠다고 하셨는데, 직접 운영하시는 가계일로 바쁘신 두 분께선 정작 아들이 출국할때는 올라오지 못하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산설고 물설은 곳에서 공부하느라 힘든 아들도 걱정이 되지만, 남편따라 어린 아이 데리고 먼 길에 오르는 며느리가 더 안쓰러우셨나보다. 그런데, 이 어지신 두 어른께선 자신들의 방문이 행여나 사돈댁에 실례가 될까하여 부산에서 새벽 첫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셔서 사돈 댁 근처로 불러낸 며느리와 손주의 얼굴을 하루 종일 보시곤 그 날 밤 막차를 타고 다시 내려가셨다고 한다. 두 분을 터미널에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정 아버지께서 언니에게 니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어? 하고 한 마디 툭 내뱉으셨는데,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퍼서 혼났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몇 주 전에 자궁안에 알 수 없는 물질이 생겨서 그것을 제거해 내는 수술을 하셨으면서도 한동안 말씀않으셨던 친정 엄마의 마음도 이런 것이었을게다. 멀리 있는 자식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마음, 바로 부모의 마음. 정밀 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다는 진단이 나와서 참 다행이지만, 곧 괜찮아 질꺼라고 큰 소리를 치시는 엄마의 목소리엔 예전 같은 힘이 없다. 딸자식은 시집가면 끝이라더니,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번을 더 태평양을 넘나들면서도 갈 수 없는 난 그저 전화기에다 대고, 약 꼭 잘 챙겨먹으라고 큰 소리만 쳐댄다. 못됐다.
대학원을 서울로 진학하면서 집을 처음 나서던 날, 엄마는 그 넓은 가슴과 따뜻한 두 손으로 내 가슴이 터질만큼 꼭 끌어안으시며,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보낸다. 엄마는 이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지게 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가 되시니 너와 늘 함께 하실꺼야. 사랑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그 온화하면서도 담대한 목소리와 따뜻한 가슴과 두 손이 너무나도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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