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이 모두 어수선하다. 한국에서는 생활고로 인한 자살 사건과 정회장의 죽음, 연일 보도되는 온갖 정치적 스캔들이 이젠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미국에서는 며칠 전 동부지역의 대규모 정전 사태로 거의 모든 업무와 일상이 일시 마비가 되었다. 정전사태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으로서의 미국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국가 기간 산업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근본적 회의를 가져오게 하는 사건이이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의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마찬가지라고 느끼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문제와 사건은 있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정전 사태를 놓고 미국과 캐나다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내지도 못한 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책임공방과 상호비방은 정말 민망할 정도이다. 정치인들은 나라 안팎의 시급한 현안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경제회복과 안정,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공방과 이전투구의 논란만이 있다. 대다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만이 깨끗한 척 글을 쓰고 방송을 해댄다. 썩은 시체에 침을 흘리며 덤벼드는 하이에나의 행태다. 모두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남의 탓이다. 증거를 들이대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둘러댄다. 남의 탓도 할 구실이 없으면, 상황과 조건을 탓하고, 심지어는 조상과 묘자리를 탓하기도 한다. 물론 살다가 보면 우리는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과 형편에 내몰리기도 한다.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남들이 그러한 상황을 이해해주면 모를까,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남의 탓을 하고 남의 나쁜 점을 비판하고 있을 때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자기 눈에 비치는 다른 사람의 나쁜 모습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L. Stevenson)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 하이드가 지킬 박사의 다른 모습이듯이, 다른 사람의 나쁜 모습, 내가 싫어하는 모습, 그것이 내가 억압해왔던 나의 본성의 다른 측면일 수 있다.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지킬박사는 순전한 악의 화신인 하이드가 되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약물을 통해 변했지만, 나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기만 해도 지킬은 바로 하이드로 변했다. 지킬 박사로 되돌아 와서는 다시는 하이드가 되지 않기로 맘을 먹고 더 선한 일을 하지만, 지루한 일상에서의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하이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지킬은 다시 하이드가 되는 것이다. 지킬박사는 하이드를 자신에게서 분리해내지 못하고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함께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악한 모습의 하이드를 분리한 완전히 선한 모습의 지킬박사는 존재 할 수 없는가? 우리는 우리 안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인 악한 면을 제거하고 선해 질 수 없다는 말인가? 하이드가 죽을 때 지킬 박사도 함께 죽는다는 바로 거기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면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자기 안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여야 한다. 그러나 자기를 죽이는 것이 지킬 박사처럼 대책없이 하이드와 함께 죽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기 속에 도사리고 있는 선/악의 대립구도를 없애는 것이다. 선/악의 대립구도를 설정하고 선이 악을 이기고 극복하려는 방법으로는 절대로 악을 제거할 수 없다. 선과 악은 상대적이자 동시에 존재하는 자신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선(善)=나’이고 ‘악(惡)=남’이라는 구도로는 절대로 사회의 대립과 갈등, 선/악의 이분법은 극복될 수 없다. 이분법적 사고로는 항상 자기에게 선인 것이 남에게는 악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나=선’이고, ‘너=악’이라는 이분법과 분별심이 자기 마음속에서 사라질 때에야 비로소 대립은 극복되고 참된 자신의 삶, 거듭난 삶이 펼쳐질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연기(無我緣起)의 삶이나 기독교의 거듭남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무아의 삶을 실천하고 거듭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버리고 죽여야 하는 것이다.
중국 선종(禪宗)의 육조 혜능대사(惠能大師)는 진리를 묻는 제자에게,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不思善 不思惡)."고 했다. 선의 반대되는 것이 악이 아니라, 선과 악을 분별하는 분별심이 진짜 악이다. 모든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나 자신의 문제이다. 남을, 정치인을, 상황을 탓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모든 게 내 탓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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