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이라는 지난 글에 대해서 누가 전화로 시비를 해왔다. 요즘같이 가치관이 혼란한 세상에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책임한 말이 아니냐? 오히려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시비를 분명히 가리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변변찮은 글에 관심을 가져주니 한편 반갑기도 하여,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네. 네. 그렇습니다.하고 약간은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분은 그렇게 황희 정승식으로 모두 옳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서도 안 된다고 나무랐다. 그 말에도 네에하고 대답을 하자, 그 분은 더욱 언성을 높이고 일장 설교를 하였다. 자신은 기독교인이라며 의(義)의 하느님의 말씀대로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해야 하며, 그래야 혼란과 부패가 없어지고 바른 세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왜 그분이 전화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 번 글에서 불교를 인용하여 기독교의 거듭남과 비교 운운한 것이 뭔가 심히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아! 이 딱하고 딱한 중생아!하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제가 글이 서툴러서 그랬나 봅니다. 그러나, 좀 오해를 하신 부분도 있는 듯하니 제 글을 한 번 더 살펴보십시오했다. 그 말에 그 양반은 내가 뭘 오해했단 말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쯤서 결국 나도 막말을 하고 말았다. 쓸데없는 시비하지 마시고, 그렇게 한가하면 기독교인라니 성경이나 한 구절 더 읽고 잘 새겨서, 말로만 떠들지 말고 정말 하나님 뜻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나 고민해보시오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람들은 똑 같은 것을 놓고도 보는 관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심지어는 같은 종교, 같은 교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른 경우가 많다.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거나 당사자나 남의 삶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해석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 상대적인 다양한 견해를 모두 인정해 주어야하는가 하는 문제는 달리 논의해야할 문제이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은 어설픈 자기 종교의 믿음이나 견해를 내세워 다른 신앙과 의견을 배타시하고 적대시하는 태도이다. 바로 그러한 이분법적인 태도를 지적하고자 한 것이 지난 번 글이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不思善不思惡)는 것은, 어떠한 분별심, 즉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은 순수하고 완전한 마음 상태로 되돌아가라는 뜻이다. 그렇게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참으로 있는 그대로 자신과 세상을 보라는 가르침이다. 기독교식으로 비유하자면, 그것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기 이전의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에 인간은 선도 악도 알지 못했다. 에덴 동산은 Eden이라는 말 뜻 그대로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극락(極樂)세계이다. 그 ‘지극한 즐거움의 땅’(極樂), 에덴 동산에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알게 되자 거기에서 추방되어 온갖 수고와 고통을 겪게 되었다. 에덴 동산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지만 벗어도 부끄러운 줄 몰랐고 지배와 복종도 없었다.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알게되자 모든 것은 달라졌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알게 되고, 지배와 복종이 생기고, 원수와 저주가 생겼다. 추방된 인간은 에덴 동산에만 있는 생명나무 실과도 못 먹게 되어 영생도 할 수 없게 되니, 생사의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선악과는 이분법과(二分法果)요, 분별심과(分別心果)다. 선악과에서 ‘선악’은 남녀, 미추(美醜), 피아(彼我), 호오(好惡), 고락(苦樂) 등등 세상의 모든 대립과 분별, 이분의 대명사인 셈이다.
인간 세상의 일은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의 세계요,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한 생각 일으킨 이후의 세계이다. 그건 절대적 세계인 천국이나 극락이 아니라, 선악과 모순, 고통과 쾌락, 대립과 갈등이 뒤섞인 상대적 세계이다. 양 종교의 궁극 목표가 천국의 삶과 극락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 세계, 한 생각 일으키기 이전 세계로 돌아가는 것, 아니 그런 삶을 지금 여기서 살아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 종교만이 옳고 진리라고 하는 아집과 독선은 양식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저급한 정신수준을 가진 무지한 자라는 것을 스스로 선전하는 꼴이다. 어리석고 무지몽매하여 불쌍한 중생이여! 하느님의 가호와 부처님의 가피로 어서 깨어나기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