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으로서 100세 생일잔치를 가질 정도로 장수하는 경우도 드문 일인데 이민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올해, 100세 생일을 맞는 한인 할머니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1903년 8월25일에 출생한 김신통 할머니(호적상 이름 김신자, 사진). 음력으로 환산할 때 오는 9월21일로 꼭 100세 생일을 맞는 김할머니는 이날 현재 거주하는 그로스 포인트 매너 너싱홈에서 시카고, 휴스턴, 달라스 등에 사는 자식들과 너싱홈 가족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생일상을 받는다.
자식들의 초청으로 79세때 미국으로 건너온 김할머니는 “너무 많이 살아 귀가 잘 안들리고 영어를 못해 불편한 점이 있다”며 오랜 세월과 한국 굴곡의 역사의 고단함을 전한다. 그러나 김할머니는 100세의 고령임에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새벽, 점심, 저녁기도를 거르지 않는다. 주위에서도 김할머니는 매일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100번씩 줄을 맞춰 쓰고 성당에 갈 때에는 항상 예쁘고 정갈한 옷을 입는 등 항상 깨끗하고 알뜰한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또 김씨는 신통이란 이름은 할머니께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으로 한국에서 호적상 김신자로 바꿨는데 다시 미국으로 오니까 주위에서 다시 신통으로 부른다며 이름의 배경을 상세히 소개하고 자녀들의 직업, 손자들의 나이, 직업 등을 또박또박 전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100년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100년의 삶, 일제시대와 6.26전쟁 등 한국 근대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김할머니는 가장 기뻤을 때와 힘들었을 때를 묻자, “14세에 결혼을 하고 20세가 됐을 때 남편이 철도국에 취직해 농사를 더 이상 짓지 않게 됐을 때가 가장 기뻤고 힘들었을 때에는 6.25나 일제시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시부모를 모시며 농사를 할 때가 힘들었다”며 소박하게 답변하기도.
9남매를 키우다 전쟁통에 장남과 장녀를 잃고 딸 셋은 먼저 사망해 이제 미국에 있는 3명의 아들과 한국 대전에 있는 아들 그리고 13명의 손주들이 있는 김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아 힘들고 언어문제로 이곳이 내고향만은 못하지만 자주 찾아와주는 며느리와 아들, 손주들이 좋다”며 “자식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고 작은 소망을 말했다.
한편 200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일리노이 거주 한인중 당시 90세이상 고령자는 남성 13명, 여성은 64명이었고 이중 97세이상 고령자는 여성만 5명이었는데 이들이 올해까지 계속 생존해있다면 100세이상 한인도 모두 5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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