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사극으로 방영되고 있는 ‘무인시대’는 고려 중기 무신집권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인통치자들의 흥망성쇠를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무신집권시대를 연 정중부가 난을 일으킬 때 가장 공로가 컸던 이의방은 썩은 조정을 바로잡고 사직을 보호한다는 대의를 내세우면서 반대파를 제압한 후 권력을 전횡하다가 역적이란 혐의를 뒤집어 쓰고 정중부 부자에게 살해되었다.
정중부 부자도 사직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권력을 휘두르다가 청년장군 경대승에게 잡혀 죽었는데 정중부 부자와 사위 등 3명의 참수된 머리는 역적이란 오명으로 거리에 매달렸다.
당시의 이른바 개혁세력으로 떠오른 경대승도 권력을 손아귀에 잡으면서 왕실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여 다행히 역적으로 몰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폐주 의종을 살해한 죄를 문책받을 것이 두려워 향리에 숨어살던 이의민이 경대승의 사후 권력을 장악하며 극심한 횡포를 부렸는데 결국 역적 혐의로 최충헌 일파에게 피살됐다. 이렇게 하여 최씨 집권시대로 넘어가는데 4대에 걸친 최씨 시대에도 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이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됐다.
그런데 그 후 800여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권력투쟁도 그 때와 너무도 유사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만 정부가 부정부패로 무너졌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으나 또 민주당 정부도 부정부패와 무능이란 낙인을 찍은 5.16 군부세력에 의해 몰락했다. 5.16을 일으킨 군인들은 부정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는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으나 구악을 뺨치는 신악을 만
들어내고 말았으니 그것이 곧 정경유착이다.
그 후 사회개혁을 한다고 사회정화위원회와 삼청교육대를 만들고 정당 이름을 정의당이라고까지 한 전두환, 노태우는 부정축재와 군사쿠데타를 한 죄로 감옥살이를 했고 그들 자신이 사회정화의 대상, 삼청교육대의 순화교육 대상이 될 만큼 악덕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YS도 ‘개혁’을 부르짖었고 DJ도 사정의 칼을 휘둘렀으나 과연 어떻게 되었던가. YS와 DJ의 아들들이 모두 부정부패를 저질러 감옥살이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800여년 전의 고려시대와 오늘날의 대한민국시대는 엄청나게 다른 세상이지만 이처럼 권력이 권력을 부정하면서 순환하는 원리가 같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모두 통치자에 의해 가치가 부여되고 현실이 재단되는 인치의 전횡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은 집권세력은 구세력을 제거하는 구실로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 개혁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후에 자신들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되었던 것이다.우리는 개혁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개혁이라는 말의 본질은 변화에 맞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사고와 욕구가 변화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법이란 형태로 구체화되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법의 규제와 적용을 받게 될 때 사회의 개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혁을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전유물로서 착각하여 자신들이 개혁의 주체라고 생각하는데 개혁의 한계가 있다. 검찰에서 어떤 사건을 수사할 때 그 수사는 이미 성역이 없음을 뜻하는 것인데 대통령이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하면 대통령이 바로 그 성역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개혁을 한다고 나선다면 대통령은 개혁의 주체이지 결코 대상이 아니란 말이며 이는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의 무오를 뜻하는 말이다. 이래서 개혁은 물 건너 갈 수 밖에 없다.
지금 한국에서는 불법대선자금 문제로 시끄럽다. 불법대선자금을 금지하고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되어 칼자루만 쥐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한국적 정치에서는 그 칼자루를 쥐기 위한 살벌한 투쟁과 온갖 협잡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시대의 발전에 걸맞는 개혁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고려 무인시대에 횡횡했던 인치의 폐습을 이제는 단절해야 한다. 진정한 법치의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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