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월 초하루에 처음 받은 전화는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의 부음이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몇 년전 새로 분양받은 외삼촌의 현대식 아파트에서 임종을 맞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언제나 대청마루가 있고, 창호지 바른 문이 있는 한옥집에 계셨다.
그 집은 육이오 전쟁 때 행방 불명 되신 외할아버지께서 해방 후 사신 집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그저 방학 때 재미있게 노는 놀이터처럼 여겨졌던 그 집이 실상은 외할머니가 살아오는 동안 겪으신 많은 아픔도 함께 한 곳이라는 걸 안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할머니께서 그 집을 다시 짓지 않으시는 건, 언젠가 돌아오실 지도 모르는 외할아버지께서 집을 못 찾으실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는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 어렸을 적에 밤중에 나무대문이 유난히 삐걱거리고 인기척 같은 것이 들리는 날이면 외할머니는 잠을 못 이루시고 자꾸 밖을 내다 보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내게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아는 외할머니는 억세고 조금은 뻔뻔하기까지 한 할머니의 전형이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을 키우고 시부모를 봉양하느라 늘 억척스러우셨고, 시장에서 큰 목소리로 악착같이 가격을 흥정했었다. 자식과 손주들에게 집착이라고 할 만큼 애정을 보이셨고 행여 섭섭하게 대해 드리는 듯 느끼시면 심술을 부리기도 하셨다. 한 번도 외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 내보이신 적이 내 기억엔 없었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말이라면 가끔 지나온 고된 세월을 원망하면서 ‘다 네 할아버지 때문이다’라는 말 뿐이었다. 내게는 그저 이름뿐인 외할아버지여서 그 분에 대해 아무런 그리움, 아쉬움 같은 감정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기에, 외할머니도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리움 이나 기다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말은 아마도 그리움이 너무 사무쳐, 터져버릴까봐 그리 에둘러서 표현하셨던 것이라는 것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이민 와서 향수병에 시달릴 때, 너무 그립고 답답하고, 외로움에 지쳐 갈 때, 문득 떠 오르는 것이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지내던 추억이었다. 어스름 달빛에 장독대는 희미하게 빛나고 나무 대문은 바람에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계셨다. 추운 겨울에도 내 목소리를 알아 들으시고 맨발로 대청마루를 건너 섬돌에 내려오시던 외할머니.
할머니께서 할아버지를 기다리시면서 느꼈을 그리움, 답답함, 애잔함이 나의 심정과 겹쳐져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감상에 젖어 눈물 몇 방울을 흘리고 난 후, 삭막했던 마음이 포근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자꾸만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성년이 되어 힘들고 팍팍한 순간에 윤기가 되어 흐른다는 것을 …….
아아! 달빛에 비친 장독대의 항아리들,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 애틋하고 살가운 내 유년의 뜰, 그리고 그 곳에 계실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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