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 해결을 위한 2차 6자 회담이 지난해 12월에 개최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북미가 상이한 접근과 해결 원칙을 놓고 타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6자 회담 참가국들이 교차 방문외교를 통해 공동성명 문안을 마련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북 핵 문제 6자 회담 참가국들의 조율이 분주한 가운데 중국 측 6자 회담 수석대표인 왕이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 연말 평양 방문에서 강석주 제1부상으로부터 회담 조속 개최동의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2차 회담이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3국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보낸 공동성명 초안에는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행동’ 원칙 대신 미국의 새 제안인 ‘조율된 상호조치’의 광범위한 원칙적 문안을 제기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검증’하고 ‘돌이킬 수 없게 폐기’ 한다는 맥락에서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이 먼저 핵무기 폐기 용의를 밝힌 후에야 그에 상응하는 대북 안전보장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한-미-일 공동문안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대북 에너지 및 경제지원이 포함돼 있지 않고 오히려 북한의 핵 의심 시설에 대한 공개사찰을 요구하고 있다. 한-일 당국은 문안 작성 과정에서 북한이 핵 계획을 포기하는 대가로 제공할 구체적인 경제적 인센티브를 놓고 이견을 보인 것으로 보도됐다. 미국이 정확하게 언제(timing)대북 안전 보장조치와 대북 경제지원을 하는지에 관하여 불투명하고 모호하다.
북한은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새 조건을 제시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의 동시 일괄 타결안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수 없다면 최소한 차기 6자 회담에서 ‘첫 단계 행동조치’라도 합의하자고 제안했다. 첫 단계 조치의 내용은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테러지원국명단서 제외, 정치 경제 군사적 제재와 봉쇄 철회, 중유, 전력 등 에너지 지원을 하라고 요구했다.
북한 당국은 경제적 대가 없이는 핵 폐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의 대북 경제원조 및 안전보장을 북한의 핵 동결과 동시에 교환할 수 있음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2003년 12월 15일 노동신문 논평에서 한-미-일 공동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북한은 6자 회담의 재개는 미국이 첫 단계 조치를 수용여부에 달려있다고 했다. 북한은 ‘동시 일괄타결안’을 실현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미국은 북한의 동시 일괄 타결안의 첫 단계조치를 받아 드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2차 6자 회담의 12개월 개최무산 대한 책임은 미-북 양측이 함께 져야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북한과 미국의 강경 정책으로 핵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보고 교착상태에 놓인 6자 회담의 재개를 위한 몇 가지 정책건의를 하고자 한다.
첫째, 지난 3년간 부시행정부가 북한과 진지한 협상을 하지 못한 것은 북한의 핵 공갈에 보상해서는 안 된다(no blackmail)는 인식을 금과 옥조로 믿고 있는 부시행정부 내 신 보수 강경파들의 고집 때문이다. 그들은 조속한 핵 동결이 장기적으로 핵 폐기로 가는 중간단계 임을 인식하고 이를 대북 경제 인센티브 제공과 함께 긍정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둘째, 김정일 위원장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붕괴를 교훈 삼고 리비아 가다피의 대량살상무기(WMD) 포기선언의 용단을 배워 새로운 사고와 인식을 갖고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시의 적절하게 대처하여 현실적이고 융통성 있는 정책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북-미 간 뿌리 깊은 상호불신으로 인해 상호 양보나 타협할 정치적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북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이라고 늦지 않았다. 북-미 당국은 6자 회담틀 속에서 직접양자회담에서 강경책 일변도보다는 융통성을 갖고 진지하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만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북-미 당국은 양보와 타협정신으로 차기 6자 회담에서 북 핵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나갈 것을 촉구한다.
곽태환
이스턴 켄터키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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