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마치고…김경원 특파원
<서울-김경원 특파원> LA에서 미국 정치인과 정계 활동을 취재하다가 한국의 선거 현장에서 바라본 17대 총선은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실체 없는 깜짝 이벤트들만이 판을 친 이상한 선거로 보였다.
불륜을 주제로 한 드라마, 짜릿한 TV광고 등 감성적 코드를 자극하는 상업광고 트렌드에 길들여진 유권자들은 눈물과 향수를 부각시키는 정치인들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처럼 보였다.
각 당 지도부가 감성적 유세에 나서자 다른 후보자들도 이 전철을 밟았다.
선물·돈봉투로 유권자를 감동시키는데 만 익숙해있던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감성을 건드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한 후보는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채 길거리로 나왔다. 또 다른 후보는 대로변에 천막을 쳤고, 어떤 후보는 등산화를 신어도 불편한 산길에서 맨발 유세를 하며 산행 나온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기도 했다.
튀는 행동과 복장으로 자신을 표현한 지역구 후보자처럼 정당 지도부 역시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극심한 불경기 등 당장 눈앞에서 닥친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감성적인 이벤트로만 당락의 승부를 걸었다.
이상한 선거는 당락이 결정된 뒤에도 계속됐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 경쟁했던 후보자들은 경쟁자의 승리를 축하해주고 패배자의 낙심을 위로해주는데 인색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은 정당과 후보는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만 주력했고, 패배의 쓴잔을 마신 이들은 재기를 약속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당락이 결정된 뒤 패자가 승자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는 성숙된 모습을 한국 정치판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미지와 이벤트가 난무했던 총선. 실체 없이 이벤트로만 승부수를 걸었던 한국 정치인들이 산적한 국정현안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한국형 선거를 지켜 본 솔직한 소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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