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요사이 본국에서 주도되고 있는 교사들의 ‘파병 반대 시국 선언’등은 한국이 좌익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국민의 다혈질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항이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미감정은 미국에 대항하는 반항의식보다는 피해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본국에서 요사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반미감정은 긍정적으로 볼 때는 주체의식의 발로요, 부정적으로 볼 때는 자주를 앞세운 배타, 즉 자존심의 발로일 뿐이다. 동서 냉전이 이미 오래 전에 와해, 이념의 흑백 논리에서 벗어난 한국사회가 한국내 미 주둔군과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어졌고 이념(민주주의)수호를 앞세워 미국으로부터 내정간섭을 받을 이유도 사라졌다. 이제 한국도 한국의 색깔을 찾을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의 반미 감정은 시대적 흐름으로 보아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는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반미 감정’과 ‘반미 행동’은 질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일본의 경우는 원폭피해의 굴욕을 딛고 친미로 돌아서 나라를 중흥시켰다. 물론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대세를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했던 일본은 아부에 가까울 정도로 친미로 돌아서며 다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설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는 미국의 경제 원조, 경제공조(무역)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제 발전을 이루고도 선진국 진입 일보 직전에 삼천포(반미)로 빠지고 있다. 이유는 가깝게는 과거의 적이었던 북한과의 관계 개선(통일)에 미국이 방해된다는 것이요, 멀게는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는(이라크 전쟁)미국에 대한 반감이다.
북한과의 관계가 급선, 통일에 대한 환상이 현실로 다가온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적대국, 미국이 껄끄러운 존재로 떠오르게 됐다. 그러나 그렇기 ‘반미’한다는 사고는 매우 감정적인 발상이다. 미국이 통일에 방해된 다는 사고는 선동 정치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햇빛정책’이 반미로 퇴색되고 말았다면 이는 민족 백년 대계에 엄청난 실정이 아닐 수 없다. 민족의 미래 보다는 근시안적 선동정치에 놀아난 꼴밖에 되지 않는 다. 통일을 부정할 한국 사람은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일 정책이 한사람의 정치가에게 ‘노벨 평화상’을 가져다 준 것 외에는 다른 이득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이는 손해보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이제 현실을 다시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무모한 반미감정으로 놀아날 때가 아니다. 특히 교사의 직분은 주관적 판단을 강요하는 위치에 있기보다는 객관적 지식을 가르치는 자리이다. 반미 감정은 자유이나, 반미 행동은 국익을 좌우하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등장,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경제 전쟁 시대에 ‘반미’나 따지며 국력을 낭비할 시기가 아니다. 한국의 지성들은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 각자의 위치로 원 위치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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