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암흑기는 아마 조선 영조 치하였을 게다. 조선조 최장 집권기간인 53년 동안 영조는 금주령을 엄중하게 집행했다. 술꾼들을 발본색원하지는 못했지만 술 먹다 걸렸다 하면 패가망신은 기본이다. 당시 변방의 한 장수가 금주령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영조는 이 장수를 압송하라고 명령했다. 숭례문 앞에 나가 장수를 직접 참수해, 파직을 권고한 신하를 무색하게 했다. 영조의 금주령에 대한 집착은 그토록 강했다.
음주단속반이 술을 팔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현장을 급습해 주인을 두들겨 팼다. 이 주인은 다음날 관가에 끌려가 모진 형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주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칠순 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지고 이내 구순의 할머니마저 몸 저 누웠다가 세상을 떠났다. 술을 팔았다는 이유만으로 3대가 이승을 하직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래도 영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금주령 집행에 한발도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
단속반이 술 판매와 음주 사실을 적발할 생각은 않고 비밀 술집을 알아낸 뒤 입막음용 뇌물을 챙기는 데 빠져버렸다. 술을 찾아다니다 술이 내뿜는 ‘독기’에 취해버린 것이다. 단속반의 비리에 대한 상소문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움찔할 영조가 아니었다. 금주령 집행에 관한 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영조였다.
그런데 그의 꼬리를 내리게 한 일이 터졌다. 단속반은 건수 올리기에 열을 올렸다. 첩자를 술집에 보내 술을 사 먹도록 한 뒤 현장을 덮치는 일이 자행됐다. 술집 주인이 법에 따라 처벌됐다는 보고를 받은 영조는 멈칫댔다. 그리고는 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 것이니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풀어준 한편 함정단속을 편 관리의 ‘옷‘을 벗겼다. 금주령 집행을 ‘신탁’으로 여겼던 영조도 함정을 파놓고 죄를 씌우는 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음주와 단속 사이에 놓여 있는 ‘함정’은 지금도 건재하다. 가주주류통제국과 경찰기관이 미성년을 미끼로 삼아 술을 사게 한 뒤 업주를 적발하는 함정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전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음주의 폐해는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격정적인 청소년이 술을 마셨을 때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른다는 점도 우려의 대상이다. 그러나 죄를 저지르도록 덫을 쳐놓은 뒤 잡아 벌하는 관행은 성숙한 방법이랄 수 없다.
“오죽 문제가 심하면 그렇게 하겠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함정단속을 합리화할 명분이 되는지는 논란거리다. 함정단속은 법 준수 의식을 제고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서로에 대한 불신의 골을 깊게 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미성년에 술 판매 금지’란 법 목적이 ‘함정단속’이란 법 집행 수단을 정당화하는지 고민할 만하다, 21세기 미국사회라서 더욱 그러하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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