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학생 시위 주도 라팔마 정병용씨 45년전 회고
미완의 혁명으로 불리는 ‘4.19’.
5.16 군사쿠데타로 빛이 바랬어도 역사는 4.19를 한국 민주주의에 불꽃을 지핀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피끓던 청춘들을 백발 성성한 장년으로 만든 반세기의 세월은 4.19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더 많게 만들었다.
1960년 당시 성남고 3학년이었던 정병용(65·라팔마)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성대하게 추모하면서 온 국민이 성취한 4.19는 점점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현재 한국의 주도세력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1960년 3월17일 서울 영등포역 앞. 성남고 학생 400여명이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자’ ‘100만 학도 총궐기하자’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3.15 부정선거를 규탄했다.
정씨는 4.19의 도화선이 된 서울지역 고교생 데모 중에서도 가장 먼저 터져 나온 이 날 시위를 주도한 공로로 1963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민주세력을 총칼로 짓밟은 군사정권에서 준 훈장을 왜 받았냐는 질문에 그는 “훈장은 정권이 아닌 국가에서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한 뒤 “5.16 군사 쿠테타로 4.19의 의미가 반색됐지만, 국민들이 지금도 박정희를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는 것은 그만큼의 공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4.19 때 학생과 시민들이 궐기한 것도 이승만 대통령이 아닌 부정 부패한 정치 세력에 대한 심판이었다”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 헌신은 인정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45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백발이 성성해진 정씨는 “비록 이역만리에 살고 있지만 후손들이 4.19의 정신만은 바르게 간직하면 좋겠다”면서 “4.19 혁명에 참여했던 옛 동지가 있다면 연락을 바란다”고 말했다.
정병용 (714)522-7478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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