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간직했던 변호사 꿈을 환갑이 넘어서야 이룬 고석문씨.
교수·부사장 등 역임 고석문씨 늦깎이 도전 2년만에 시험 합격
화공학 전문가로 화려한 인생을 꾸려오던 60대 한인이 보장된 노후를 포기하고 변호사 시험에 도전해 합격의 영광을 안아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OC 레지스터지는 화공업계의 유능한 엔지니어로 승승장구하던 고석문(62·영어명 맥스)씨가 교수자리까지 버리고 지난 5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과정을 11일자 탑기사로 보도했다.
고씨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의 전형적 모델이었다.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고씨는 미국 유학후 경영학 석사와 화공학 박사학위를 취득 후 록히드 마틴, 연방 기술정책 자문기구, 대형 화공업체를 거치며 40대 초반에 8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이후 그는 한국의 매출규모 100억달러의 규모의 통신회사 수석부사장으로 일하다가 울산대의 교수로 임용됐다.
하지만 1968년 한국에서 미국 화공회사들의 특허신청을 도우며 맛본 ‘변호사’에 대한 매력을 포기할 수 없어 2001년 후반 오렌지카운티로 돌아온 그는 코스타메사의 위티어 법대에 진학해 만학에 매진했다.
만류하는 가족과 친지들이 많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거워했던 고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2년 넘게 책으로 둘러싸인 샌타애나의 아파트에서 매일 10시간 넘게 공부하며, 노후저축 30만달러를 쏟아 부었던 고씨는 자신의 생일 파티가 준비되고 있던 지난 5월20일 저녁 인터넷으로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벌인 ‘인생일대의 도전’에 대한 대가를 확인했다.
자식농사도 잘 지어 큰 딸 수잔(32)은 베니스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둘째 딸 크리스틴(30)은 웨스트 LA에서 피부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고씨는 “나에게 뇌세포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라며 인생황혼에 맛 본 최고의 성취감을 겸손히 드러냈다.
<배형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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