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나 공연, 또는 강연을 듣거나 본 후의 기분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우린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로 그런 기회가 차츰 줄어드는 것 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28일 와이키키 리조트호텔 서울정에서 열린 민주평통 하와이협의회 주최 ‘박종화 국제위원장 초청 평화통일 특강’은 그야말로 유익한 강연회였다. 일요일 오후에 열린 강연회 임에도 불구하고 각계 한인인사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다만 참석자들 중 60여명이 특정 교회 신도들이었다는 점이 조금 아쉬운 대목이었다.
한국 경동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박 위원장은 강연에 앞서 정파와 종파를 초월해 평통위원으로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남북관계를 진솔하게 밝힌다면서 섣부른 종교적 편견을 경계했다.
이날 강연에서 박 위원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과 남한의 대북 전력송출 제안 등 남북관계의 당면과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한편 해외 동포들이 남북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도 제시해 주었다. 특히 이날 강연회에서 기자의 관심을 끈 대목은 유럽 파이프라인에 대한 박 위원장의 설명이었다.
유럽통인 박 위원장은 유럽에서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소련에서 스페인까지 연결되어 있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때문이라는 어느 수상의 말을 인용했다.
즉 각국의 편리가 첨예하게 걸린 에너지 문제를 이용해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와 유사한 파이프라인이 동북아에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사실 2003년초 노무현 정부 출범시 시베리아 사할린의 천연가스를 북한을 통과해 남한으로 끌어오면서 가스관 통과 대가로 북한에 가스를 제공하자는 이른바 동북아 에너지 협력 구상이 수면위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코러스(KoRus) 파이프라인 계획’이라 명명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그 뒤 흐지부지 사라졌지만 지금도 대북문제를 푸는 유용한 대안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박 위원장은 세계질서가 자국 이익 중심으로 철저하게 움직이고 있고 한반도의 통일문제도 우리 민족의 손을 벗어나 주변 강대국의 역학 구조와 맞물려 전개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소련, 중국, 북한, 한국, 그리고 일본을 잇는 동북아 파이프라인은 유럽의 파이프라인처럼 이 지역을 전쟁의 위험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주변 강대국이 모두 참여하는 동북아 집단 안보 공동체를 신설,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면 전쟁의 위협은 그만큼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파이프라인의 지혜를 통해 전쟁 없는 평화통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면서 민족의 살 길을 모색해 보자는 박 위원장의 강연은 참으로 설득력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내실 있는 강연회와 달리 강연회장 분위기는 특정 교회의 집회장으로 비쳐질 정도로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우선 주최측인 민주평통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종파와 정파를 아우르며 조국통일의 선봉에 서야 할 민주평통이 자신들이 주최한 행사에서 특정 종파를 부각시키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교회도 친분과 권한을 사용할 때 분명한 경계선과 절제가 필요하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알았으면 한다. 강연회를 통해 배운 파이프라인의 지혜는 우리 모두를 만족하게 만드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정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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