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개봉되었던 영화 중에 존 보이트 주연의 ‘폭주기관차’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로 더 유명한(?) 존 보이트. 이 영화에서 그는 탈옥수로 등장합니다.
탈옥한 주인공은 알래스카의 황야를 헤매다 디젤기관차를 발견하고 무작정 올라탑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기관사가 심장마비로 숨지게 됩니다. 통제불능 상태가 된 기관차는 폭주를 시작하고 이에 철도국장은 더 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기관차의 탈선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탈옥으로 인해 자존심이 상한 형무소 소장은 헬기를 타고 주인공을 생포하기 위하여 기관차의 탈선을 방해합니다. 주인공 존 보이트는 형무소 소장에게 붙잡히는 것 만은 피하기 위하여 충돌로 인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기관차석을 분리하여 눈 덮힌 시베리아 철길을 질주합니다. 마지막 장면. 주인공 존 보이트는 눈보라를 헤치고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 위에 서서 헬기를 타고 뒤쫓는 형무소 소장을 향하여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외칩니다. ‘너는 결코 나를 사로 잡을 수 없다’고.
그리고 주인공은 죽음이 예정된 대 충돌을 향해 달려가는 기관차 위에서 절대 내려 서지 않습니다.
형무소 소장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죽더라도 이겨보겠다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영화였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자꾸만 떠 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떠오르는 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문구의 소설 중에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책 서두에 보면 이러한 글귀가 있습니다.
“그러셔, 누가 말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좋다, 이거여.” 작금의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보면 폭주 기관차처럼 서로 ‘갈 때까지 가 보자’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기만 합니다.
도로에 Stop사인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잠시 멈추어 사방을 둘러 볼 3초간의 여유도 없이 상대방을 몰아세우는 모습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세계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세상을 지향해 나가고 있는데 어찌하여 한국 사회는 일도양단 식의 싸움만 계속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보수는 무엇이고 진보는 무엇입니까? 우파와 좌파라는 편가르기 식의 분열과 갈등은 이미 구 시대의 유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붙잡고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처연해 보입니다. 아날로그 시대가 지나고 디지털 시대가 열렸다고 이야기만 하고 있으면 뭐합니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집단적 편 가르기의 아날로그식 사고 방식이 망령처럼 떠돌아 다니고 있는데 말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은 남북 전쟁 당시“A devided house can not stand!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인류 최강의 집단이라 할찌라도 머리 따로 몸통 따로 나뉘어진다면 생존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무조건 옳고 너는 무조건 틀리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사람과 국가에게서 기대할 것은 없습니다.
지금은 파멸을 행해 달리는 폭주 기관차에서 내려와 함께 손을 잡고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는 더 이상 안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성경의 말씀대로 함께 모여 지혜를 구해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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