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자식들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거리 곳곳에 화려한 성탄 장식들이 불을 밝히고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있는 요즘,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한 조선족 출신 여인의 자식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은 그러나 이루어지기 힘든 소원이 되어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 속에서 메말라 가고 있었다.
비운의 주인공은 현재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김옥자(63)씨로 불법체류자란 신분으로 10년 동안 한국과 하와이에서 불안속에 숨죽이며 살다 이제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그녀의 기구한 사연은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김 여인은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출신이다. 그녀의 인생역정은 서른의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1남2녀의 가장이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가난 속에서도 자식들만을 위해 열심히 살았고 1996년에는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아들의 장가 밑천을 벌 요량으로 딸과 함께 서울로 갔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심약한 그녀는 공장 옆 허름한 단칸방에 몸을 숨긴 채 은둔생활을 했고 방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여권과 소지품 등 그녀가 가지고 있던 전재산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그 때 여권 브로커가 그녀에게 하와이를 소개했고 그녀는 2000년 하와이에 불법 입국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인 김 여인에게 하와이도 그리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었다.
그녀는 한 한인노인회 사무실로 무작정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노인회측의 배려로 그곳에서 밥과 청소를 해주면서 기숙했다. 그 후 2001년 지금의 남편 김만욱(67)씨를 만나 결혼을 했고 비로소 그녀에게도 진정한 안식처가 생기는 듯 했다. 그 후 비록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남편과 함께 병원을 정기방문하며 노래 봉사도 하고 교회에서 펼치는 노숙자 봉사에도 참여하는 등 자원봉사를 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김 여인은 올 가을 간암 판정을 받았고 그녀의 삶은 다시 고통으로 곤두박질쳤다.
한국에서 화재로 불타 없어진 여권도 우여곡절 끝에 최근 다시 발급받았으나 그 기쁨도 병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현재 김 여인은 지인의 도움으로 지인의 거처에 기거하면서 약물치료와 통원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복수가 찬 상태라 거동이 불편해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눈물로 지새고 있다.
김옥자씨는 “자식들 잘 먹일려고 애쓴 죄 밖에 없는데...”하면서 “자식들에게 돈이라도 보태 주었으면 편안하게 눈을 감을텐데 그러지 못해 더욱 미안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남편 김만욱씨는 “아내가 괜찮아 질거라고 믿는다”며 아내의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두 딸을 초청할 계획이었으나 스폰서가 없어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