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은 분명히 ‘금’‘은’‘동’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금을 제치고 ‘은’을 칭찬하고 있다.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금’보다 크기 때문이다.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이호석이은메달을 따냈다. 여섯명이 한줄로 바짝 붙어서 달리고 있다. 어느 한 선수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지막으로 달리던 한국 선수가 첫번째로 들어왔다. 두번째는 이번 경기에서 자신의 입지를 떳떳하게 해보려는 각오가 너무도 역력한 오노 선수가 전혀 틈새를 허락지 않으며 달리고 있다.
세번째가 이호석이다. 마지막 라운드를 남겨놓고 이호석이 줄에서 이탈했다. 영문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곧 이유를 알았다. 커브를 돌면서 원심력으로 느슨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겠다는 전략이었다. 너무 멋진 장면이었다.
사실 경기 전 오노 선수는 이상한 암시를 시청자들에게 하고 있었다. 나도 이 영향으로 혹 한국선수가 더티 플레이를 하게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우였다. 다음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이런 정도의 실력이라면 일등도 어렵잖게 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호석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등도 한국 선수인데 다투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갓 스물을 넘겼음직한, 한낱 아이로 생각했는데 행동과 생각은 너무도 성숙해 있었다. 잘 된다 싶은 가게 옆에 바짝 붙여 차려 놓고 서로 죽이기 싸움을 벌이는 우리 어른들에게 귀감이 되는 성숙함이 아닐 수 없다.
이일 이후 동계올림픽을 보다 보니 또 하나의 감동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사샤 코헨이라는 미국 피겨스케이팅 선수이다. 두번씩이나 넘어졌다. 그것도 경기 초반에 시청자도 또 경기자인 코헨 자신도 이젠 메달의 꿈은 절망이라고 모두 생각했다. 그러나 은메달이다. 용기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 이민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 탈없이 금을 딸 수 있는 일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99%가 넘어지고 상처받으며 때론 절망하며 산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우린 때로 우리 자신들과 자녀들에게 일등만이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세뇌하며 살고 있다. 옆을 볼 겨를도 없고 때론 목표를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불행하다. 은메달은 금메달을 못따서 불행하고 등외 선수는 등내에 들지 못해서 불행하다. 이렇게 보면 일등을 제외하곤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정상을 오른자는 언젠가는 내려오게 되어 있다. 코헨의 은메달은 비록 그가 금메달을 얻어내지 못한 하나의 실패(?)였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하지 않을 용기를 주는 실패였다면 그 의미가 금메달에 비할까.


박춘식 치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