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두 집이 있었다. 한 집은 일곱 식구로 단란한 가정이었으나, 다른 한 가정은 세 식구인데도 항상 문제가 많았다.
어느 날 세 식구 가장이 일곱 식구 가장에게 물었다. “댁은 식구도 많은데 어떻게 그리 사이가 좋소?” 그러자 일곱 식구 가장은 “댁은 모두 잘났고, 우리 집은 모두 못났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했다. “우리 집에는 실수로 컵을 깨도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아니야 내 잘못이야. 컵을 거기에 놓은 것이 내 탓이야 라고 하지요. 어떤 일이든지 저마다 내 탓이라고 합니다.” 세 식구 주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 참, 진리는 가까운데 있었군요. 우리 집은 서로 상대방을 탓하고 나무라기만 했지요. 서로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니 평화롭지 못하고 날마다 시끄러웠어요.”
이 일화는 지극히 작은 일에도 조금만 마음을 쓰기만 하면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말이 있다. 집안이 평안해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는 뜻이다.
결국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가 원만히 영위되기 위해서는 가족 모두가 서로를 보듬고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누구든지 어울려 살게 되어 있다. 만남의 기쁨은 삶의 원천이자 인생을 보람되게 해준다. 그 중에서도 가족의 만남은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어쩌면 우리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만남은 시작이며 동시에 헤어짐이다. 부부의 연을 넘어 부모자식, 형제자매, 친구 등으로 엮어지는 만남은 우주의 신비에 버금가는 각별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사회변화로 이제는 가정이라는 위치도 많이 달라졌다. 특히 이민의 맞벌이 가정에서는 무조건 복종보다는 자각 있는 생활 주체로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 법. 가정이라는 사회의 기본단위 공동체가 보금자리이며 최상의 안식처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다.
인간만이 행복을 창조한다고 말한다면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랑의 관심과 눈길도 중요하다. 세상은 작은 봉사와 관심만으로도 변화된다. 관심은 눈길을 주며 초점을 맞추는 사랑이다. 꼭 남녀간 이성간의 사랑만이 아닌 아가페 적인 사랑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관심과 사랑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지난달 나는 새 손주를 한 명 더 보는 경사를 맞았다. 베이비싯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는 고단하지만 천사같이 고운 손주들의 해맑은 눈동자 속에서 행복과 사랑을 찾으며 삶이 빛나는 즐거움을 찾고있다.
때로는 삭막한 이민생활이 버겁게 느껴져도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즐거움을 자각한다면 더없이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채수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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