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민주평통이 주최한 청소년 웅변대회는 진짜 웅변대회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읽기 대회였다. 게다가 읽어 내려간 원고도 학생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내용이 아니라, 눈과 입으로만 읽는 시늉을 내는 그런 수준이었다.
미국에 사는 한인 2세들에게 조국에 대한 관심을 북돋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의도는 좋다. 하지만 주최측은 아이들의 현실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
한국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 북한을 알면 얼마나 알겠으며, 이념으로 갈라진 남과 북의 통일문제에 대해서 과연 어떤 의견을 가질 수 있겠는가.
모두 21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반 정도는 한국어로 나머지 반은 영어로 참가했다.
주최측이 한국어 웅변을 장려한 때문인지 한국어가 어눌한 아이들도 자신의 언어인 영어를 제쳐두고 한국어로 참가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래도 영어로 참가한 아이들은 좀 낫다. 자신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니 주제가 좀 어렵더라도 원고내용과 그 내용을 전달하기가 훨씬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로 참가한 아이들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극소수를 제외하곤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연설의 내용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평화통일 관련제목에 언어학적 측면의 접근 이라느니, 안보적 측면의 접근 이라는 부제를 사용했다. 자신이 다니는 한글학교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보적 접근, 언어학적 접근이라니...
주최측은 또한 시상식에서 가장 많이 참가한 한글학교에 상금을 수여했다. 그런데 21명의 참가자 가운데 한 한글학교에서만 10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참가자들이 웅변대회인지 읽기대회인지 헷갈리게 하더니, 나중에는 주최측이 평통 대회인지, 한글학교 대회인지 혼란스럽게 했다. 참가자를 늘리기 위한 사정은 알겠지만 좀 심했다.
대안을 생각해보자.
먼저 언어문제. 아이들 수준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면 한글을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한국어와 영어로 참가할 수 있지만, 한국어 참가 학생들에게 점수를 후하게 줄 필요는 없다. 참가 학생이 영어보다 한국어가 자연스러운 경우에만 한국어 참가를 권해야 한다.
다음은 웅변수준 문제.
원고를 읽는 참가자에게 큰 감점을 주는 방식으로라도 읽는 수준은 벗어나야 한다.
아니면 웅변대회가 아니라 읽기 대회로 변경하던지. 겨우겨우 한글을 읽는 수준으로는 내용을 학생 스스로 쓸 수 없을 뿐더러,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표현하기도 어렵다.
대필문제.
아이들의 대회는 아이들에게 맡겨놓아야 한다. 어른들이 옆에서 원고를 대신 써주는 행위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오히려 방해할 뿐이다. 주제나 구성에 관한 조언정도는 문제없다고 생각되나 글을 써주고 아이들을 대독하는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면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주최측에게 사고를 좀 넓히라는 요구를 하고 싶다. 평통이 주최하는 것이라 해서 아이들의 주제를 평화통일에만 한정하는 것은 너무 닫힌 사고방식이다.
미국에 사는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에게 평화통일에 관한 주제는 너무 어렵고 거창하다.
주제를 정해놓고 아이들에게 들어오게 하지말고, 폭 넓은 주제로 아이들에 다가가는 대회로 거듭나길 바란다.
김용우
라디오 서울 보도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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