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에 영주권 선사”
폐암 판정후 힘겨운 싸움
영주권 받기 직전 사망
가족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영주권을 안겨주려고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한 가장이 영주권을 받기 직전 세상을 떠나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더군다나 가장이 죽고 난 뒤 한달만에 이민국에서 지문을 찍으러 오라는 연락 통지서가 날아와 주변사람들은 가족들이 불체자로 전락할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01년 1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두 딸 하나(23)와 예나(20)를 데리고 미국에 온 이재흥씨는 소액 투자이민 자격으로 토랜스에서 세탁소를 열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소액 투자 이민으로는 영주권을 취득할 수 없어 봉제공장에 취직까지 했다.
모든 게 순탄해 보였다. 그러나 어둠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이씨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는 어떡게 하든 살아보고자 사력을 다했다. 자신이 없는 가족들에게 영주권은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지난 4월13일 “괜히 미국에 데려와서 고생만 시켜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 채 눈을 감았다.
그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그토록 기다렸던 이민국으로부터 지문을 찍으러 오라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본인이 사망할 경우 영주권 신청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부인 이숙희씨는 “일단 남편의 죽음을 숨긴 채 벨플라워에 있는 이민국 사무실에 가 지문을 찍었다”면서 “남편의 지문 채취 날짜를 2달 뒤로 연기하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다”며 흐느꼈다.
이씨의 죽음이 남긴 여파는 컸다. 갚아야 할 병원비가 8만달러에 이르는 데다 둘째 예나가 학업을 중단해야 할 처지다. 지난해 UC샌디에고 장학생으로 선발된 예나였지만 영주권이 없으면 장학금은 고사하고 유학생 신분의 비싼 등록금을 내야 했기에 진학을 포기했다.
그나마 예나는 학비가 상대적으로 싼 사이프레스 칼리지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경제적 상황이 점점 나빠져 자퇴를 고려 중이다.
부인 이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고 싶지만 더 힘들어 할 딸들 때문에 참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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