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절제수술을 받은 브래드필드 일가의 사촌 10명이 라스베가스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 마이크 슬래바우가 서있다. 이들은 희귀한 유전성 위암을 피하기 위해 위를 통째로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위암 유발 희귀 유전자 공유 ‘운명 바꾸기’
아버지 형제·자매
6명 모두 단명
DNA검사로 판명
위 제거 수술 받아
개인의 운명을 피하거나 바꿀 수 있을까.
마이크 슬래바우는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의 앞길에 가로놓인 ‘운명의 함정’을 멋지게 건너뛰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마이크의 사촌 10명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 11인은 유전자 속에 ‘운명의 저주’를 담고 태어난 피붙이들이다.
마이크의 할머니 골다 브래드필드가 물려준 희귀 변이 유전자로 인해 11인의 사촌들은 부모를 비롯, 부모와 삼촌, 혹은 숙모 6명을 차례로 잃었다.
골다 할머니가 위암으로 타계한 후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7남매 가운데 숙부와 숙모 6명이 40대와 50대 초반의 한창 나이에 똑같은 병으로 세상을 뜨자 마이크는 이들의 죽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한마디로 ‘집안 내력’에 의심을 품게 된 것.
자신의 유전자 속에 주변 친척들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이 담겨 있다고 믿었던 마이크는 스탠포드 대학을 찾아가 검사를 요청했고 대학병원 측은 DNA 검사를 통해 그의 유전자에 기록된 ‘죽음의 신탁’을 풀어냈다.
골다 할머니가 물려준 변이 유전자로 인해 마이크가 위암에 걸릴 가능성이 70%에 달한다는 것이 유전자에 새겨진 ‘신탁’의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생물학적 저주’를 타고 난 셈이었다.
물론 저주의 대상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고인이 된 삼촌과 숙부들의 자녀들, 즉 그의 사촌 17명 전원이 유전자의 공격권 안에 놓여 있었다.
마이크는 즉각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촌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DNA 검사를 권했다. 그 결과 10명이 디퓨즈 개스트릭 캔서’(diffuse gastric cancer)를 일으키는 변이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전세계를 통틀어 단 100여 가정에서만 발견된다는 변이 유전자를 집단으로 ‘대물림’한 마이크와 사촌들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70%의 실현 가능성을 지닌 ‘저주’를 피할 단 하나의 방법은 위를 통째로 제거하는 것. 그러나 밥통을 잘라내 버릴 경우 섭생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하루 소량씩 자주 먹어야 하고 음식도 가려야 한다. 그렇다고 30%의 확률에 의지해 버티자니 겁이 나는 게 사실.
결국 운명과의 ‘주사위 놀음’에서 마이크와 사촌들은 체내의 ‘밥통’을 송두리째 내주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쪽을 택했다.
마이크가 솔선해 위 제거수술을 받자 사촌들이 다투어 뒤를 따랐다.
수술팀은 이들의 위를 완전히 잘라내는 대신 내장으로 연결되는 식도의 끝 부분을 주머니처럼 볼록하게 만들어 위의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사촌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끝나기는커녕 이제 막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크와 사촌들은 되새김질을 하는 소처럼 하루 종일 우물우물 음식을 곱씹어 삼켜야 한다. 게다가 너무 심하게 운동을 했다 싶으면 몸부터 홀쭉해진다.
그래도 11명의 사촌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위가 없다는 공통점을 지니게 된 11명의 사촌들은 최근 라스베가스에서 모임을 갖고 우의를 다졌다. 운명과의 ‘집단투쟁’에서 승리했다고 확신하는 이들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촌으로 변해 있었다.
<이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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