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들어왔던 노래 가사와는 달리 두만강은 푸르지도 않았고 뱃사공도 없었다. 또한 애창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에는 푸른 송이 없었다. 일제시대 때 모두 잘라냈다는 것인데 수년 전 그 자리에 새로 심은 소나무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김정일을 위대한 21세기의 지도자로 칭하는 커다란 선전문구가 없었다면 강 건너 보이는 동네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양쪽의 국경은 평범했다. 탱크를 앞세운 주둔군이라도 있어야 실감이 날 텐데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는 조그만 경비초소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방문, 확인한 것은 선구자의 기상이나 두만강의 뱃사공, 북한의 어려운 살림 같은 것들이 아니고 오히려 중국인들의 캐피털리즘이었다.
중국의 도문(중국어 발음으로는 투먼)시와 북한의 남양시를 이어 주는 다리의 절반까지 가려면 중국돈 20원(약 2달러50센트)을 내면 된다. 중국 쪽에서는 전망대를 세워놓고 20원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었다. 그 전망대 위에서는 북한산 담배와 김일성 배지를 팔았다.
두만강에는 중국측 반쪽만을 오가는 유람선을 띄워 방문객들을 유혹했고, 백두산에서는 입장료, 셔틀버스 값을 따로 받더니만 산중턱에서 셔틀을 멈추고 지프차로 갈아타게 해놓았는데, 물론 이것은 또 돈을 더 내야 했다.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갈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비용도 앞의 셔틀버스보다 비싼 게 당연했다. 천지 연못가에서는 천지 물로 커피를 끓여 판다고도 했다.
과연 중국인들이 이러한 자본주의적 기질을 어떻게 공산주의 지배하에서 억누르고 살았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90년대 중반에만 해도 옛 도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상하이가 이젠 홍콩과 흡사한 고층 건물의 숲으로 변했고, 다른 중소 도시는 물론, 변방의 도시 연길에까지 건설의 망치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을 보며 미국의 일각에서 중국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엄살이 아님을 절실히 느꼈다.
두만강 변을 따라 서쪽으로 일이십분 가니 강 너머에 북한쪽 집단농장 지역이 나왔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왔다갔다하는 모습은 보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단 한 명도 농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우리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일을 하든 말든 다 똑같이 배급받아 사는데 누가 일을 합니까? 중국에서도 집단농장이 있었던 시절에는 아무도 일을 안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가이드의 북한측 집단농장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현실과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국은 이미 그러한 사회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그의 말이 새롭게 나의 인식을 파고들었다.
내가 80년대 말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만 해도 중국 본토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만나면 기분이 약간 섬뜩했었다. 그들의 모택동 복장은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난 나에게는 공산사회의 벽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었고, 다가가서는 안될 듯한 분명한 거리감을 의미했었다.
두만강 변에서 나는 요즈음 한국사회의 한쪽에 또렷이 존재하는 ‘우리의 소원은 오직 통일, 공산화의 통일이면 어떠냐.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 뭉치는 게 우선이다’는 논조를 떠올려봤다. 그 말을 하는 이들이 집단농장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같은 민족끼리 함께 일하니 기쁘다며 얼싸안고 일을 할까? 그런데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나는 싫다며 포옹을 풀고 달아나지는 않을까?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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