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에 방벽을 높이 쌓아 불법민자들을 봉쇄할 것을 논의하고 있다. 국경 넘어 멕시코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멕시코 신문과 방송이 이 이슈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다. 오는 7월 있을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도 이 이슈는 뜨거운 감자다. 민족주의 정서에 불을 지피는 정치인들도 있다. 하지만 방벽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이 주목을 받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멕시코 대통령 빈센트 폭스는 방벽 아이디어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미국이 멕시코 노동자들의 합법적 미국이주를 원활히 해주는 방안을 수립한다는 조건이다. 폭스 행정부 밖에서는, 방벽이 멕시코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기회’로 작용할 것이란 것이란 의견도 있다. 또 방벽 이슈 자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연간 100만 일자리 필요한데 고작 10만개 창출
무작정 월경, 막일로 지난해 200억달러 본국 송금
멕시코 정부·정치인, 자국경제 살리기보다 ‘무임승차’
“방벽이 각성과 개혁의 계기될 것” 전향적 자성론 주목
방벽은 불법이민자들이 소노라 사막을 건너다 죽어가는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양국이 그 동안 서로에 의존해 살아 온 부분이 극명하게 부각될 것이란 점이다. 미국은 불법이민자들의 저임금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경제안정과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멕시코는 이들 불법이민자들이 미국에서 힘들여 번 돈이 본국으로 송금됨으로써 자국 내 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방벽이 세워지고 불법이민이 불가능해지면 불법이민자를 정점으로 한 양국의 경제적 연결고리가 갈라지면서 예기치 않은 문제점이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벌써부터, 멕시코는 미국이 멕시코의 저임금 노동력을 원하기 때문에 불법이민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 의회가 이민자들을 옥죄려는 것은 멕시코에 대한 적대감의 표출일 뿐이라고 비난한다.
멕시코 대선에서 폭스 대통령의 후계자의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것도 상당부분 이민 이슈에 기인한다. 폭스가 방벽에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 미 의회 내 보수파들에게 미움을 살 것이다. 그러나 국내 정적들에게 호재를 주는 셈이다. 방벽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가 만일 불법이민자에 대한 구제방안이나 손님노동자 프로그램이 흐지부지되면 국내 정적들로부터 “미국에 굽실거리고 아무 것도 얻은 게 없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폭스 자신은 물론 후계자로 지목한 펠리페 칼데론 마저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외교정책 전문 칼럼니스트 라파엘 카스트로는 “벽은 대화의 채널이 아니다. 폐쇄성만 키울 뿐이다. 미국은 방벽 제안으로 몽둥이를 든 것이다. 당근은 없이 말이다” 하고 성토했다.
방벽 지지 정치인들은 카스트로의 날카로운 비난의 타겟이 된다. 차기 대선 후보인 마누엘 오브라도는 폭스 행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멕시코 이민운동가 프리미티보 로드리게스는 “방벽은 이민자뿐 아니라 멕시코를 위해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반겼다. 로드리게스는 그 동안 멕시코 정부와 정치인들은 불법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벌어 본국으로 보내오는 돈으로 경제가 굴러가도록 했을 정도다. 국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법이민 자체를 수수방관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방벽의 긍정적 의미를 언급하는 멕시코 사람들은 방벽이 멕시코의 홀로서기를 촉진할 것이고 정치인들과 정부의 대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연간 약 50만명이 멕시코 땅을 떠나 미국으로 무작정 가는데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었지만 앞으로 방벽이 세워지면 어떻게든 국내에서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 경제는 노동인구 증가를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일자리의 10%정도만 충족시킬 뿐이다. 연간 100만개의 잡이 생겨야 하는데 고작 10분의 1 수준이니 멕시코인들의 미국행을 막기는 힘들다. 한편 미국에서 일하는 멕시코 이민자들이 지난해 본국에 송금한 돈이 2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멕시코 주정부나 시정부의 예산보다 많은 액수다.
멕시코 정부 자문위원으로도 일한 로드리게스는 만일 멕시코인들이 방벽으로 인해 미국으로 가지 못하고 국내에 남아 있게 되면 멕시코 정부는 ‘집안 정리’에 몰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살아갈 방도를 찾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란 얘기다. 미국에서 일해 송금하는 불법이민자들에 의지하지 않고 엉망인 국내 경제를 개혁할 방도를 모색할 것이란 전망이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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