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난 ‘골프계의 큰 별’ 바이런 넬슨(오른쪽)이 지난 96년 PGA투어 바이런 넬슨 클래식에서 우승한 필 미켈슨과 함께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소·트랙터 등 살 돈 벌려고 뛰다
전설적인 골퍼 된 ‘그린의 신사’
“저는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골프에 대해서나 좀 알고 스튜를 만드는 것, 착하게 사는 걸 아는 정도죠.”
26일 향년 94세로 숨진 골프계의 큰 별 ‘롤드 바이런’ 바이런 넬슨은 이렇게 소박한 사람이었다. 1945년 11개 대회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세운 사람이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웃을 정도로 너무나도 겸손하고 매너 좋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넬슨은 11연승을 거뒀던 1945년 토탈 18차례 챔피언에 오르며 프로골프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작성했다. 타이거 우즈에 따르면 PGA투어서 11개 대회 연속 우승 기록을 깨는 게 메이저리그에서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깨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나 1944∼45년 2년 동안 54개 대회에 나가 31승을 거둔 넬슨은 34살이었던 다음 해 자신의 텍사스 목장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은퇴했다.
넬슨은 바로 그 목장이 골프를 잘 치게 만든 원인이다. 상금을 따내면 목장에 투자할 돈이 생기고 소와 트랙터 등을 살 수 있는 게 ‘인센티브’였다고.
그 ‘인센티브’가 넬슨을 역사상 최고 골퍼 중에 하나로 만들었다. 넬슨은 1937년과 42년 매스터스에서 우승했고 US오픈은 39년에, PGA챔피언십은 40년과 45년에 제패했다.
하지만 넬슨은 97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회 상금이 이렇게 커지고 선수들이 공을 이렇게 멀리 치는 날이 올 줄을 상상도 못했다”며 “나는 커리어 통산 상금이 18만7,000달러였다. 1937년 브리티시오픈에서 5위에 올랐는데 상금이 고작 187달러였다. 직장에 한 달 휴가를 내고 간 것을 감안하면 한 3,000달러는 손해를 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스폰서는 없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걸작이었다. “위티스 시리올을 받은 적이 있다. 그 것도 금방 생긴 것은 아니고 7∼8연승쯤 거둔 뒤에서야 주더라. 하지만 나중에 200달러를 더 받았다”며 웃었다.
한편 넬슨은 1944년과 45년 AP 선정 ‘올해의 남자 선수’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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