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스탠스태드 공항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려 겨우 출국 보안검색대를 빠져 나와 출발 시간 5분 전인 비행기로 뛰면서 오사마 빈 라덴을 원망했다. 스페인까지 두 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공항에서 허비하게 만든 것은 알 카에다의 테러가 원흉이니까.
욕을 많이 먹으면 명이 길어진다더니만, 그래서인지 그는 아직껏 잡히지도 않는다. 그 이론대로라면 적어도 한 달에 두 세 번은 비행기 탈 일이 있는 내가 그에게 퍼부은 욕만 합쳐도 그의 목숨 연장에 상당한 보탬이 되었지 싶다.
숨을 헐떡이며 비행기에 올랐더니 아직껏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승객들이 수십 명이나 되어 출발이 몇 십분 지연되리라고 한다. 다시 알 카에다를 원망하다 문득 나의 생활 한가운데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존재를 느끼며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저지른 테러에 의해 오늘날 이슬람과 중동의 여러 문제들이 세계 방방곡곡 뉴스 미디어의 주요 메뉴가 되었다. 기실 9.11 사건 이전에 미국이나 그 외 대부분의 동서양 국가에서 이슬람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그 무엇’이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그러한 이슬람의 ‘세계화’를 단숨에 이룩한 셈이다.
물론 그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세계의 몰락과 이슬람의 세계 지배를 원해서 테러를 한다지만 이슬람이 세계무대 중앙으로 나오면서 이슬람의 현대화가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니 그의 원 뜻과는 오히려 반대의 효과가 나는 셈이다.
빈 라덴이 주창하는 이슬람은 인간의 많은 욕망을 억제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별다른 희망을 주지 못하기에,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늘어나면 날수록 이슬람은 인간의 자유에의 열망과 개인적 성취를 수용하는 쪽으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유세계의 개방되고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대표 주자인 미국은 요즈음 부시 대통령 아래서 별로 닮고 싶은 행색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어! 네가 한대 때렸어? 그럼 나는 더 세게 두대 때린다. 까불지 마!” 부시 행정부의 소위 ‘테러와의 전쟁’은 이런 식의 동네 골목대장들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알 카에다의 위협을 전임 클린턴 대통령이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부시 행정부의 비난에 대답하기 위해 오랜만에 언론에 나온 클린턴은, 테러와 싸우는 현재 세계의 문제는 인류사회 모든 인간들이 가진 공통점과 유사성은 제쳐두고 서로의 다른 점에 집착한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저렇게 현명한 인간이 어쩌자고 르윈스키 스캔들을 일으켜 극단 보수주의를 등에 업은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일조를 했던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부시와 그러한 클린턴이 모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나라가 또 미국이니 바로 거기에 열린 사회, 미국의 진수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제 선거철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민주·공화 양당은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일 것이다. 선거 전략의 귀재라는 칼 로브 같은 사람이 먹물 튕겨 선거에 이기는 게임은 이제 졸업하고 대신 그 좋은 머리로 전 인류가 서로의 유사성에 근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전략이나 짜내면 얼마나 좋을까 몽상에 잠겨본다.
yk@campwww.com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