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하먼이 빛바랜 편지와 사진을 들어보이며 원기준씨를 찾는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미군 제시 하먼, 70대 원기준씨 찾아…
“내년 방한때 만났으면”
“50여년이 흘렀지만 죽기 전 한번 만나보고 싶구려…”
한국전이 종전한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참담한 비극을 계기로 맺어진 인연들이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정을 나눴던 친구들을 찾게 하고 있다.
제시 하먼(75)도 그중 하나. 1952년 제5기갑 84공병단 소속으로 부산에 첫 발을 디딘 하먼은 판문점에서 배치됐다가 맹장수술을 받는 바람에 서울의 캠프로 후송돼 부대 시설관리를 맡게 됐다.
그 때 하먼이 만난 한인이 원기준씨다. 하먼이 기억하는 원씨는 1953년당시 4자녀를 둔 가장으로 영등포에 살았다. 나이는 하먼보다 두세살 위로 지금은 70대 후반이 됐을 것으로 기억한다.
하먼은 “원씨는 부대관리를 위해 고용한 일종의 잡역부였지만 나와 보조를 맞추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면서 “이국땅에서 외롭던 나를 가족같이 대해주고 집으로 초대해 식사도 함께 자주했다”고 말했다.
하먼은 또 “원씨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치면서 더 배울 것을 권해 서울대에 나가 야간 한글 수업을 들었다”면서 “지금도 띄엄띄엄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의미는 거의 잊었다” 말했다.
하먼의 기억에 따르면 원씨는 일제시대 일본에 가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한국전쟁 발발전 사탕공장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고 미군부대에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의형제처럼 지냈으며 고향인 인디애나주에서 하먼의 어머니가 동네의 옷을 모아 원씨 가족이 입으라고 보내주기도 했다.
1954년 귀국한 하먼은 원씨의 자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했으나, 편지가 한두번 왕래한 이후로는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내년 봄 아시아쪽으로 여행계획을 세운 하먼은 원씨를 찾아보기 위해 5월 3일부터 한국에 3일간 머물 일정을 추가했다.
54년 원씨로부터 받은 누렇게 바랜 편지와 당시 한국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하먼은 “아직 살아있다면 원씨를 꼭 만나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며 반세기 넘게 간직해온 마지막 소망을 풀어놨다. 전화 : (310)419-4671, 우편 : 8306 Wilshire Blvd. #390, Beverly Hills, CA 90201, 이메일 : jgharmon@aol.com
<배형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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