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맨해턴비치의 모의 유엔회의 행사장.
핵확산방지위원회에서는 “핵 확산은 전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란 미국대표의 발언에 “핵 보유 여부는 개별 국가의 권리 아닙니까?”란 인도대표의 반론이 이어졌다. 그러나 당초 참가국으로 설정됐던 북한대표와 이란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실제 세계’에 대한 고교생들의 생각은 들을 수 없었다.
모의 유엔회의에 참석한 한미연합회(KAC)의 한인 학생들은 당초 북한과 이란을 대표하기로 한 고교의 불참에 대해 “모두의 적인 북한을 대변했다가 회의에서 공격의 타겟이 될 것이 뻔해 참석을 안 한 것 아니겠느냐”며 결론을 내렸다.
이번 모의회의는 ‘진짜 세계’에 대한 옅은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격차, 여론의 왜곡 등 지구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준 기회였다.
닷새 뒤 열린 반기문 전 한국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취임식이 동양인의 ‘세계대통령’등극이란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 강대국들의 이익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UN의 실상이 가려졌다면, 학생들의 모의회의는 야수들의 적나라한 전쟁터란 세계 상황을 대변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고교는 15개교로, 비영리단체로는 한미연합회(KAC)가 유일하게 참석했다. 각국의 다양성을 표방하는 유엔의 취지와 달리 이날 모의회의에 참석한 학생은 백인 학생 80%에 동양인 학생 20%수준이었다. 흑인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같은 인종적 쏠림현상은 왜곡된 여론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어 모의회의마저 현실의 재판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을 인솔한 한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흑인 학생들이 많이 재학하는 학교를 찾아가 다양한 학생들로 팀을 꾸리고 싶다고 밝혔지만 아무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유야 어떻든 흑인 학생들의 불참은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문제를 보여준 셈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 한 가정의 학생들일 수록 국제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세계를 움직이는 여론 주도층에서 저소득층을 제외, 부유층 중심의 세계질서를 만드는 현실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 회의에 처음 참석한 한인 학생들은 경험부족으로 백인 학생들의 ‘말빨’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후레쉬맨들이 다수를 이룬 아주 단순한 모의회의임에도 한 한인 시니어 학생은 “어떻게 토론을 하고 의사결정이 되는지 몰라 힘들었다”며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고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이날 회의는 한인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줬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반 사무총장의 취임식에 비해 무관심속에 벌어진 모의회의지만 세계의 현실과 국제질서를 여과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미래 사무총장의 꿈을 키워나가는 ‘코리아타운 키드’의 현실배우기의 좋은 장이었다.
<이석호>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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