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는 무숙자들도 많지만 새벽잠을 설치면서 음식을 장만하여 이 무숙자들을 섬기는 분들도 많다. 이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그들을 섬긴다.
나도 두주 전 그런 사랑의 현장을 목격했다. 그 한 무리의 봉사자들은 따끈한 밥을 준비하느라 서둘렀겠고 무겁고 불편하련만 프로판개스 통들을 끌고 와서 조금이라도 덥고 맛있게 먹게 하려고 즉석에서 불고기를 구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다운타운의 사이사이 길목으로 세차게 바람이 흩날리면서 사방으로 불고기 내음이 퍼졌는지 흩날리는 빗방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숙자들은 긴 행렬을 이루었다. 밥 푸는 위에 받쳐진 우산이며 고기 굽는 위에 펼쳐진 우산들을 거센 바람에 흔들리며 이윽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봉사하는 대열은 조금도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손길들을 더욱 바삐 움직여 가고 있었다.
한 봉사자가 비가 너무 세차니 그만 접고 가자는 소리도 했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줄지어 음식을 기다리는 그들을 보고는 어느 누구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든 봉사자들은 머리도 옷도 흠뻑 젖은채 음식에 빗물이 떨어 질까봐 오히려 더 안타까워했다.
그 때였다. 조금 전에 음식을 받아갔던 한 여인이 비를 맞으며 도로 길을 건너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밥 푸던 이가 말했다. 아마 양이 덜 찬 모양이라고.
이윽고 길을 다 건너온 그녀는 여전히 미소 띤채 꼭 움켜쥔 손 사이로 무엇인가를 꺼내 보스락거리며 펼치는 것이었다. 그녀가 꺼낸 것은 플라스틱 우장이었다. 재빠른 솜씨로 머리 들어가는 곳을 쥐고 그녀는 밥 푸는 대원의 머리에 씌우며 접혀진 부분들을 몸을 따라 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또 하나를 펴서 씌워 주고, 또 하나를 … 다섯명의 봉사자들에게 그렇게 모두 씌워 주고 나서 자신의 머리카락에서는 빗물이 흘러내림에도 씨익 한번 더 웃고는 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비는 제법 쏟아지고 한기가 들었으나 봉사자들의 가슴에는 뭉클한 감격이 솟구쳤다.
그녀는 천사 같았다. 아니 천사였다. 수고하는 그들에게 찾아온 천사였다. 그들의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니라고 그들의 수고보다 더 한 것으로 일러 주었다. 봉사자들의 얼굴들을 빗물과 눈물로 흠뻑 젖게 한 감격이야말로 이 한해의 가장 큰 선물이 되었으리라.
허은숙/ 아케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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