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의 수첩’이라는 유명한 영화는 만년에 미망인이 된 여주인공이 처녀시절 첫 무도회에서 만났던 남성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내용이다. 젊은 날 꿈에 부풀어 있던 청년들이 과연 그들의 꿈을 어느 정도 이루었으며 현재 그들의 삶이 어떠한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주인공이 그들을 찾아나서는 이야기 인데, 주인공을 따라가는 관객들도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무도회의 수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삶의 노정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특히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모에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한번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어서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가 헤어지곤 한다.
불가에서는 옷깃 한번 스치는 만남도 전생의 인과라고 했지만, 사실 그 만남의 인연에는 좋은 만남, 행복한 만남도 있지만, 불행한 만남, 악연도 있고 또 슬픈 인연도 있다. 좋은 만남은 내 인생에 스승이 되어주고 나를 성장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쳐준 인연이고, 악연은 내게 상처와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이다. 슬픈 인연은 사랑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 하는 가슴이 쓰리고 아픈 인연이다.
나의 경우도 그간 만났던 사람 중에는 모습은 물론 이름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 기억 속에 존재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뼛속까지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의 생애에 잊을수 없는 사람은 내가 이민의 삶을 시작 하면서 만난 래리 토이라는 중국인 3세의 직장 상사였다. 그는 남성다운 국량을 지닌 능력이 뛰어난 상관이었다. 30년전 당시만 해도 회사 내에는 동양인이 전혀 없었으므로 동양인인 나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 특별한 기술의 일들을 내게 가르쳐 주셨고, 학교도 보내 주셔서 성장의 계기가 되어, 엔지니어라는 직책을 가지고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내 노년의 삶이 평화로운 것도 그분의 후광에 덕이다. 은퇴를 하신후 지금 어찌 살아가고 계신지 소식을 듣고 싶은 분이다.
여자 혼자 몸으로는 몇 개 일자리를 뛰어도 가난을 면할 길이 없다며 재력있는 남자를 만나 팔자를 고치기 위해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노라던 옆집 살던 바비 엄마는 지금쯤 꿈을 이루고 돈 걱정 없이 풍족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신분 문제로 오도가도못하는 신세가 되어 가족과 이별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을 안고 사시던 잔디 깎던 김 아저씨, 지금쯤은 그도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며 마음이 따뜻한 이 겨울을 지내고 계실까.
돌아보면 좋은 만남이든, 나쁜 악연이든 만남의 인연은 다 다름대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만남 이었다.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 그들은 어떤 삶을 경영 하며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하여 알고 싶은 사람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옛 애인은 만나지 말라. 그는 낡은 스웨터처럼 늘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이야기가 맞는다면 나는 ‘무도회의 수첩’의 주인공을 따르지 않고 내 가슴 깊히 묻어 두리라. 한 해가 저문다. 새해가 오고 있다.
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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