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난데없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현 5년 단임제는 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로 그 용도가 다했고 국회의원 선거와 사이클이 맞지 않아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이를 국회 선거에 맞춰 4년제로 하고 첫 임기가 끝난 후 신임을 물어 한번 더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5년 단임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가 나왔고 정치인이나 국민 가운데도 이를 인정하고 바꿔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국회와 대통령 선거가 따로따로 치러지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선에서 이긴 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안정이 이뤄지기 힘들다. 마치 입법과 행정이라는 두 바퀴가 따로따로 굴러가는 식이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에 관한 개헌을 해야 할 시기가 지금인가, 개헌 발의를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개헌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회의원 2/3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국민 투표를 통해 국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선 당면한 국회 통과를 위해서라도 한나라당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개헌안 통과를 위한 의지가 있다면 우선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협의를 거쳐 개헌 필요성을 설명하고 그 동의를 얻어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절차 없이 “내가 결정했으니 따라 오라”는 식의 제왕적 오만은 민주 대통령의 자세가 아닐뿐더러 ‘깜짝 쇼’라는 인상을 줄뿐이다.
국가 간의 정상회담이건 여야 간의 영수 회담이건 사전에 오랜 준비를 거쳐 협의를 마친 후 타협점을 찾는 것이 순리다. 대통령에게 개헌 발의 권한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성 정치인과는 대화를 거부한 채 대중을 선동해 압력을 가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남미 포퓰리즘의 행태다.
더군다나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후보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는데 의견 조율 없이 개헌이란 중요한 이슈를 불쑥 던진 것은 한나라당을 흔들어 야권을 분열시켜 보겠다는 정략적 속셈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진정으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일이라면 대통령에 취임한 후 지난 4년 동안 가만히 있다 왜 이제 와서 개헌을 서두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무능한 인물이라는데 많은 국민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지지율은 한자리 수에 재임 기간 중 말만 많았지 이뤄놓은 게 없다.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는 지금까지 벌인 일을 마무리하고 물러날 준비를 할 때지 엉뚱한 제안을 내놓고 국민을 우왕좌왕하게 할 때가 아니다.
노 대통령의 ‘동해 표기 변경 발언’에 이은 개헌 발의 소동을 보면 뭐라도 하나 남겨 놓아야겠다는 심리적 강박증에 걸린 사람이 물에 빠진 채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번 개헌 발의 발표는 지난 번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발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현실성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한나라당이 정치적지지 기반이 거의 없는 대통령이 이처럼 불쑥 던진 개헌안에 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노 대통령은 개헌 논의는 차기 정부에 넘기고 공정한 대선 관리자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필자는 전 UCLA 교환교수로 현재 LA를 방문중이다.>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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