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남가주의 겨울 날씨 치고는 제법 쌀쌀한 공기와 바람이 불어, 다른 대륙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곳의 본격적인 겨울을 생각나게 한다. 영하의 매서운 온도와 눈발까지 날리는 서울 날씨가 생각나고, 모자와 두꺼운 외투, 긴 털목도리, 두툼한 신발이 그리워진다.
작년 12월에 한국에 갔더니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을 했지만,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또 지하철 정거장까지 걸어가고 하는 동안에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지독한 기관지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자연, 자동차만 타고 다니고 겨울에도 따가운 대기 속에서 활보하는 남가주의 생활을 기억하고, 버릇이 나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LA에서 10년을 사는 동안에 추운 날씨에 대한 저항력을 완전히 잃은 것이었다. 또 걷기를 싫어하는 습관이 들어, 지하철의 긴 통로를 통해 출구를 찾고 노선을 갈아타는 수고를 좀 했다고, 다리 운동을 많이 하여 쉽게 피곤해졌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런 연후에 식욕이 더 나고, 매끼마다 패스트푸드가 아닌 정식 요리로 만든 식사를 하면서, 미국에서 운동 부족과 질이 낮은 소량의 음식으로 몸의 활력과 에너지가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몇년전 겨울에 파리에 가보니 마침 ‘고갱-타이티’라는 대 전시회를 비롯해 이탈리아에서 온 보티첼리의 작품전, 자오우키의 대 회고전을 비롯하여 구경해야 할 전시회도 너무 많았고, 저녁마다 좋은 음악회가 하도 많아 어디부터 가야 할지를 몰랐다.
LA에서는 오래간만에 비싼 문화 행사에 가도 양과 질에 있어서 마음에 뿌듯이 차지 않았던 데 비해, 그곳은 너무도 풍요로운 매일매일의 문화의 흘러넘침이었다. 그런 행사들을 쫓아다니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저녁 때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조는 것이 아니라, 일찍 밥을 먹고 옷을 차려 입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뛰어야 한다.
생업에 종사하느라고 지쳐서 집에 오자마자 먹고 쓰러지는 미국 생활은 문화적인 게으름과 자극의 부재가 특징이다. 특별한 문화적 감동이 없이 매일 천편일률적으로 먹고 자는 생활이 전부인 것이다. 이런 데에 습관이 되면 동물적인 삶의 타성에 사로 잡혀, 지겨우면서도 너무 게을러져서, 또 돈을 들이지 않으려고, 아무 의식을 깨우치는 활동을 하지 않고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노예가 된다.
그래서 의식이 있는 많은 미국인들이 외국에 나가 살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다른 나라에 가야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인이 제일 즐겨하는 외출은 쇼핑하러 가게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적인 활동에 쓰지 않는 돈을 사실은 쓸데없는 물건을 사들이는 데에 더 많이 쓰는 것이다. 물질적인 문화만이 지배하는 그들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런 데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미국 생활의 이단자일 뿐이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 사람들과 사교를 할 수 없는 것도 미국 사회의 특징이다. 머리와 의식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발달시키기 위한 운동만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활동을 하면서 골프 클럽에서 동창회와 파티를 같이 한다. 그래서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도 역시 미국 생활의 소외자들이다.
이런 소외자들은 유럽이나 아시아 대륙이 너무 먼 것을 안타까이 여기면서 외국 여행을 자주 나간다. 이곳에서 못 채우는 문화적인 욕구 불만을 가끔 그런 데로 가서 해소하고 숨을 내쉰다. 외국에 가면 미국 관광객이 제일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오늘도 외국 관광을 계획하면서, 추운 겨울에 뜨거운 열기로 문화생활을 하는 먼 대륙 사람들을 존경해 본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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