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쯤 낚시를 즐기러 다닐 때였다. LA에서 차로 8시간 달려간 멕시코의 샌퀸틴, 외딴 바닷가에서 한밤중 혼자 서있게 되었다. 함께 간 동료의 차가 모래바닥에 빠져 견인되는 동안 내려놓은 짐들을 보며 혼자 기다리게 된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진 깊은 밤이었다. 인가는커녕 인적도 없는 바닷가, 바람은 차가왔고 바위에 부딪치는 성난 파도소리가 움찔움찔 공포를 자아냈다. 그때 나는 문득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머리위의 하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옅은 하얀 안개를 얇게 누벼놓은듯 아련한 위에 그 많은 별들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빛나면서도 한꺼번엔 휘황찬란한 빛을 가득 발하며 거기, 내 머리위에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숨이 멎는듯한 아름다움이었다.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그 무한한 공간 속에 내가 아주 작은 점으로 들어있다는 생각에 한껏 겸손해지면서도 터질듯한 감동이 나를 감싸 안았다. 무섭던 파도소리가 힘찬 우주의 배경음악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기계화된 도시생활에서 잊고 있었던 먼 어린 시절의 추억, 그 순수한 동심의 고향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그날의 별빛 가득했던 밤하늘과 그 정경이 내게 일깨워준 가슴 벅찬 감동은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그 바닷가를 나는 그 후에도 자주 찾아갔다. 처음엔 그저 그 별빛과 파도소리를 못 잊어 지인들과 찾아가 텐트치고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우리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그런 몇 번의 낚시 여행 후 우린 바닷가 저편의 원주민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과 만나며 그들의 참담한 생활 형편도 알게 되었다. 의사인 내게는 무엇보다 그들에게 허용된 의료서비스가 너무 열악하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의료봉사단체 ‘바하 힐링 미션’은 이렇게 세워졌다. 그후 10여년, 힘든 일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어려움이나 피로를 딛고 지속할 수 있었던 내 마음 속의 원동력은 인간애에 앞서 그 첫날밤의 찬란하게 빛나던 별빛과 광활한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하루종일 계속되는 의료봉사가 끝난 후 한밤중 바닷가에 서서 바라보는 별빛 가득한 하늘, 마음속의 때까지 깨끗히 씻어내주는 파도소리만한 피로회복제나 세척제를 난 아직 본 적이 없다.
그 바닷가로 떠날 때면 난 항상 별자리에 대한 책을 챙겨 넣는다. 그리고 윤동주를 생각한다. 그의 시 ‘별 헤는 밤’을 수없이 읽고 또 읽는다. 그 아름다운 시인의 순수한 외로움,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은 아득하게 긴 시간과 먼 공간을 가로질러 은하수가 빛나는 이국의 바닷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은 우리들의 고백이며 마음이기도 했다.
19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내가 감격하여 마지않는 사실 두 가지중 하나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며 다른 하나는 내 마음 속에 빛나는 양심의 도덕률이다”라고 말했다.
철학자와 시인의 위대한 영혼을 감동시켰던 저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오늘 평범한 우리도 똑같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오는 2월17일 토요일 별빛 아름다운 피라미드 레이크 RV 파크에서 윤동주 문학의 밤이 열린다.
주최 측에서 내게 사회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난 기꺼이 받아들였다.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사실이 우선 좋았다.
그리고 윤동주 시의 큰 주제를 이루는 별을 바라보며 신과 친구, 순결한 이상과 고귀한 가치들에 대해 별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였기 때문이다.
<최청원>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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