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휘 미주동포 후원재단 이사장’
단체장만 17번… 한인사회 든든한 맏형
이민휘(75) 전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장은 한인 커뮤니티의 맏형으로 통한다. 타고난 보스 기질과 리더십으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단체를 17차례나 이끌어왔고 은퇴 연령이 훨씬 지난 지금도 한인 단체들 지원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주동포후원재단 이사장으로 한인 커뮤니티 원로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이사장를 만나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정과 봉사의 삶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부친·장인 유명한 독립투사… “나보다 남먼저” 가훈
한인회관 소유권 갈등 말 한마디로 해결 리더십 보여
‘자랑스런 한국인상’ 제정등 한인 단체 물심양면 지원
“미주동포 후원재단으로 한인 사회 버팀목 될것” 의욕
이 이사장의 전력은 화려하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을 시작으로 LA한인회장 2번 당선, 그리고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장을 2차례 역임했고 이밖에 4.29 폭동성금 단일화 추진위원장, 한미구호재단 이사장, 재미대한체육회장 등 단체장 직함만도 17번을 거쳤다.
이같은 전력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이 이사장은 그러나 요즘 새로운 봉사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고 했다.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미주동포후원재단의 활동을 통해서다.
“30년 넘게 한인 사회를 위해 봉사해 왔지만 고희를 넘은 지금에야 뒤에서 돕는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이 이사장은 “후원재단 사업은 스스로를 내세우기 위한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뒤에서 후원하는 것”이라며 “재단에 동참하고 있는 50여명의 원로 인사들 모두 재단 활동을 통해 일생의 마지막 봉사활동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70대 중반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부진 강단이 느껴지는 이 이사장의 이같은 봉사 경력은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내력, 그리고 타고난 리더 기질과도 무관하지 않다. 학생 때부터 학사 주먹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던 이 이사장은 혈기왕성하던 시절 보스로 불릴 만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이사장의 선친인 이규갑 목사는 상해 임시정부 창립 발기인을 지낸 독립운동가였다. 해방후 건국준비위원회 재무부장으로 활약했고 이후 국회의원도 지낸 인물로 1970년 작고 당시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러지기도 했다. 또 장인인 이갑성옹은 기미 독립선언 33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이사장은 “이순신 장군 집안의 후손으로 선친과 장인이 독립투사이셨다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결코 물질적인 집착과 개인의 이익을 고집하지 말라는 집안의 가훈대로 떳떳이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민휘 이사장이 70년대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을 맡았던 당시 장인환 열사의 유해가 그를 포함한 위원회의 주선으로 한국 국립묘지로 옮겨져 안장되었던 일화도 있다.
지난 2002년 한인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됐던 이 이사장의 자서전 ‘돌풍의 사나이 이민휘 외길’에서 부인 이봉희 여사는 숱한 풍파와 역경을 겪어야 했던 이 이사장과 지난 45년 결혼생활을 “살얼음판을 걷듯 지나온 삶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부인과의 사이에 일영(사이먼)과 원영(필립) 2남을 두었는데,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두 아들은 모두 할리웃에서 액션 배우로 이름을 떨쳐 장남 일영씨는 태권도 무술 영화인 ‘더 베스트오브 베스트’와 ‘유니버설 솔저’에 출연했고 차남 원영씨는 ‘더 베스트 오브 베스트’ 1~4편까지 주연을 맡았다.
이 이사장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최근 한인회관을 둘러싼 일부 단체간 갈등 상황에서도 잘 나타났다. “한인회관이야말로 한인 모두의 재산인데 어떤 단체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나요” 한인 사회의 맏형으로 통하는 이 이사장의 이 한마디가 단체간 실력행사로까지 갈 뻔했던 갈등을 잠재우는 계기가 됐다.
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면담해 직접 한인회관 자금 지원요청을 했다고 회고하며 던진 이민휘의 묵직한 한마디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단체간 타협안이 모색됐고 결국 원만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지난 해 미 전국의 한인 원로 50여명과 함께 후원재단을 창립해 한인사회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제정, 시상했고 재정적으로 힘든 한인단체들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활동을 아끼지 않는 등 한인사회 원로 리더로서의 롤 모델을 보여줬던 이 이사장은 후원재단을 명실상부한 한인사회의 버팀목 단체로 설 수 있도록 토대를 다져 놓는 것을 자신의 마지막 역할로 자임하고 있다.
2005년 말 이 이사장이 한인사회를 조용히 후원하는 단체를 만들어 마지막으로 봉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LA는 물론 하와이, 알래스카, 시카고, 마이애미, 뉴욕 등 미 전국 각지에서 재단에 동참해 함께 봉사하고 싶다는 원로인사들이 줄을 이었으며 바로 이 힘이 후원재단의 밑바탕이 됐다는 후문이다.
이 이사장은 “한인단체 활동을 하는 분들이 봉사의 뜻을 항상 새긴다면 사소한 갈등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단체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은 무엇보다 우선 ‘봉사’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인 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울타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는 이 이사장은 이어 “일선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한인사회의 원로급 인사들의 지혜와 경륜을 한데 모아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시너지를 창출해고 싶은 것이 저의 마지막 바람”이라며 “미래의 한인사회를 이끌 1.5세, 2세들을 지원해 이민 2세기를 향한 한인사회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는데 후원재단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이민휘씨 약력
-1956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1년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7대회장
-1979년 남가주 한인회 12대 회장
-1990년 재미대한체육회 6대회장
-1993년 한미구호재단 이사장
-1995년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16대 회장
-2006년 미주동포후원재단 이사장
<글 김상목·사진 신효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