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아이들한테서 어머니날 선물을 살피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 덕분에 나 또한 엄마 생각을 하게 되고, “아이고 내가 애들보다도 못하네” 한심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아이들보다 먼저 내가 엄마 생각을 떠올렸고, 아이들에게도 예년과는 조금 색다른 선물을 사달라고 주문하게 되었다. ‘세탁소 바지 6,500만 달러 소송’ 사건 때문이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언뜻 ‘바지 한 벌에 6,500만 달러 소송’이란 기사 제목을 봤을 때만 해도 아마 굉장히 특별한 바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사건이 연루되었고, 거기에 누군가 해괴 망칙한 계산법까지 등장시켰나보다 하고는 무심히 지나쳤다. 너무 억지가 지나치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로부터 바로 이 ‘바지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한인 부부라는 것과 사람들이 이 부부의 소송비용 모금운동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무리 소송 천국이라지만 작은 세탁소에서 보통 양복바지 한 벌을 분실한 평범한 사건이 기상천외한 금액의 소송으로 돌변하는 일을 겪으며 “환멸을 느껴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 분들의 고통이 마치 나의 부모가 겪고 있는 일처럼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가며 이 ‘바지소송’ 관련 기사들을 한참 읽고 있던 중에 마침 아이들과 통화를 하게 되었고, 이야기 끝에 내 선물 살 돈을 대신 이 분들에게 기금으로 내달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선물과 기금은 별개라면서 조금 의아해하던 아들 녀석이 “엄마가 울 엄마 생각이 나서”라는 말에 수긍을 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코끝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묵지근해지는 그 무게를 덜어내는 ‘면피용’으로 자식들까지 동원한 셈이 되었다.
한때 사람들만 만나면 이 세상 엄마들은 모두 천당에 가야한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 노릇이 너무 힘겹고 막막할 때, 엄마라는 역할에 도통 자신이 없고 어떻게 해야 엄마 노릇을 잘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을 때면 더욱 생각나는 엄마. 엄마는 날 어떻게 길렀을까 그 아픔, 그 노고가 헤아려지지 않았다.
설사 잘 못했다 하더라도 마음조이고, 발 동동 구르며 죽을힘을 다해 하는 것이 엄마 노릇이기에 그 애쓴 공을 생각할 때 엄마라는 존재는 결코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위안받고 또 위안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천당’에 갈만큼 충분했다고 서로를 위로하고 싶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안 그래도 살아내기 힘든 세상인 줄 뻔히 아시면서 ‘지옥’이라는 걸 만들어 우리들이 사는 내내 행여 죽어 ‘지옥’에나 가지 않을까 전전긍긍 불안하고 두렵도록 하실 만큼 하느님이 쩨쩨하지 않을 거란 믿음도 한몫 했던 것 같다.
어머니날을 앞두고 불현듯 난 과연 몇점 짜리 엄마였을까 궁금해 졌다. 죽은 후의 ‘천당’ ‘지옥’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엄마 노릇하는 동안 많은 순간 ‘지옥’스러워하며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옥’ 비슷한 상황들을 자주 경험하도록 한것 아닐까 마음이 아팠다.
책상에 놓인 아이들 사진을 보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그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를 알아볼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상처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남은 엄마노릇이 훨씬 ‘천당’스러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 한 순간 돌이켜 보며 기도를 시작해봐야겠다.
아마 나의 엄마도 이렇듯 항상 당신을 돌아보시며 나름대로 최선이라 여겨지는 길을 따라 지금까지 쉽지 않게 오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만점짜리 엄마로 엄마노릇 멋지게 해낸 엄마로 남으실 수 있었으리라. 나도 엄마 흉내를 잘 내다보면 꽤 점수가 괜찮은 엄마로 승격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모든 어머님들 행복한 어머니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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