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장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평소에는 그리 넓다는 생각이 들지 않다가도 연휴에 붐비던 사람들과 RV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나면 경기가 끝난 운동장 같이 텅 빈 느낌을 준다. 정신없던 연휴기간의 긴장을 풀며 한가히 남편과 같이 앞뜰 벤치에 앉아 별을 바라보며 그동안의 미국생활을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오지랖도 넓고 우리 자신을 너무 모르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았던 이민 초기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우리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봉사라고 하며 바쁘게 살았고 은퇴하고도 또 일을 저질러서 이렇게 바쁘게 산다. 사업으로 하는 일은 피곤했어도 자원봉사로 한 순수한 일들은 보람을 느꼈다. 지금도 생각하면 흐뭇하다. 무슨 일을 해도 인복이 많아서인지 항상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줘서 아름다운 과정과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밤, 새삼 시인 윤동주의 ‘별 헤이는 밤’의 별 하나의 쓸쓸함과, 별 하나의 동경, 별 하나의 시와 별 하나의 어머니, 그리고 별 하나마다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 보듯이 나도 우리와 맺은 정 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다.
70년대 이민 초기에 LACC에서 아동학 강의를 들을 때, 우리 반에는 한국에서 교육 경력이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 자격증이 없어 한인타운에 유아원이 태부족인데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었다. 그래서 LACC 총장 등 대학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유치원 원장이 될 수 있는 과목을 이중언어로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를 했다. 영어가 시원치 않아 이중언어로 수업 받는 주제에 그래도 반장이라고 그 일을 추진해서 대학 당국으로부터 허락을 받아낸 배짱이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지금은 백발이 되었을 야간공부 반 친구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이곳에 가정법률상담소가 생기기 전, 여성 보호소를 찾아다니며 가정폭력을 당한 한인 부녀자들을 도왔던 교회 친구들은 또 어디 있는지. 그 중에서도 내가 회장할 때마다 총무를 맡아 궂은일을 다 했던, 하늘나라 간 친구 김희숙 권사가 오늘 따라 더 그립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을 때, 두 차례나 수백개의 대형 노랑 리본을 만들어 한인타운에 같이 달던 친구들. 그리고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구걸하듯 굽실대며 일일이 서명 받을 때 같이 도와준 분들, 탈북 난민보호법 연방 의회 상정을 앞두고 샘 브라운 백 연방 상원의원(캔사스)을 한인타운에 초청했던 일 등등. 이런 행사들을 치른 후에는 너무 힘들어 “제 앞도 잘 못 가리는 주제에 이젠 그만 하자”고 우리 부부는 다짐했지만 그 다짐과 약속은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산장에 들어와 단체활동을 다 중단했다가 시인이 해야 할 일이라며 또 윤동주 문학선양회 일을 맡았다. 이 모임 때문에 “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는 찬사도 듣고 “윤동주 모임에서 잠시나마 몇 십년 전의 젊음을 찾았다”는 고마움도 건네받는다. 찌든 일상에서 문학으로 모처럼 환해지는 참석자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여름은 사업상 바빠서 피곤해도 쉬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또 미국에 계시는 훌륭한 강사들을 초청하고 좋은 음악 순서까지 마련해 ‘윤동주 문학 한·미·일. 국제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같이 여름 밤 별지기가 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순수한 봉사는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의 황폐가 보이는 파괴보다 더 무서운 것을 알아야한다.
오늘따라 늘 내 눈을 보살펴 주는 실력 있고 착한 젊은 의사, 언제나 우리와 한 마음으로 물심양면 도움을 아끼지 않는 고마운 분들, 그리고 이 행사를 위해 애쓰고 있는, 계산에 밝지 않은 동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별 하나의 누구누구 하며 불러본다.
이성호 시인·RV 리조트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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