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한민족포럼재단 사무국장)
내 집 뒤뜰에는 아름드리 고목 한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다. 이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나무는 혹한의 칼바람이 불고 폭설이 휘몰아쳐도 이를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인다. 내가 유난히 이 거목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끈질긴 생명력과 넉넉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겨울 뉴욕에는 다행히도 혹독한 추위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로 평년 기온을 웃돌며 연일 따뜻하던 날씨가 최근 갑자기 추워져 달력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지금이 바로 일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의 절기였다. 지구 온난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대한은 여지없이 추위를 몰
고 온 것이다.
나는 낯선 이국땅에 살면서 요즘과 같이 혹한이 휘몰아치는 한겨울이 닥칠 때마다 저항 시(詩)로써 한때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겨울이 만일 온다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요(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라는 시 구절(詩句)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이 시구는 미국 시인 퍼시 비시 셀리(Shelley:1792~1822)가 쓴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에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까이 있다는 말을 자주 원용(援用)하면서 인생의 역경을 견디어 낼 때 많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소한과 대한이라는 혹한의 큰 강을 건넜으니 셀리의 노래처럼 이제 봄도 멀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언제 다시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칠지 모르는 겨울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혹한이 몰아치면 무엇보다 우리 서민의 삶이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더구나 오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금 서민들의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졌지만 너무 움츠러 있지 말자.
겨울이 없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현상을 ‘춘화현상(Vernalization)’이라고 하는데 튤립-백합-철쭉-진달래 같은 아름다운 봄꽃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치 춘화현상을 거치는 꽃과 같아 고통 없
이는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없는 법이다.
눈부신 인생의 꽃도 인생의 혹한을 거친 뒤에야 꽃망울이 맺히는 법이다. ‘누구도 고통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위대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곱씹어 본다. 누가 고통을 경멸할 수 있을 것인가, 고통 없이 세상을 빛낸 자, 고통 없이 세상에 우뚝 선 자 어디에 있는가 한번 역사를 돌아보자.
옛날 주나라 문왕은 은나라의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사서오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을 만들었다. 공자도 역시 주유천하를 하다 마지막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값진 ‘춘추(春秋)’를 썼다. 굴원은 초나라에서 추방되자 ‘이소경(離騷經)’을 지었다. 손자는 다리가 끊기는 형벌을 받고나서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완성하였으며, 여불위는 촉나라로 귀양을 갔기 때문에 ‘여람(呂覽)’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사마천은 궁형(宮刑)을 받고서도 자결하지 않고 위대한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남겼다.
이처럼 인간은 상처를 받으면서 더욱 강해지고 향기로워지는 법이다. 조개도 제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낸 다음 고통을 이겨내면서 영롱한 진주를 품는다고 하지 않던가. 쇼윈도우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마네킹의 뒤편에는 수많은 시침들이 아프게 꽂혀 있듯이 언제나 성공한 인물의 일생 뒤에는 수많은 고뇌와 좌절과 고통의 흔적들이 숨어있게 마련이다.
이 겨울의 혹한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그리고 아직도 인생의 겨울 한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아름답고 행복한 내일을 향한 꿈을 잃지 말고 한 그루 거목처럼 어떠한 역경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자. 지금 아프고 고통스러운 만큼이나 아름다운 새 봄, 아니 인생
의 새 봄을 맞을 수 있을테니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