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믿는 자들에게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혼 속의 깊은 체험들이 있다. 그 영혼의 체험들은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일생을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에서 마틴 루터의 로마서 강해를 듣고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였고 그 경험은 그의 평생의 신앙과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영혼의 체험이 내게도 임한 적이 있다.
1990년 여름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한 지 1개월 만에 미국연합감리교 서(西) 미시간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인 시골교회 목회를 처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하루는 집에서 약 45분 정도 떨어진 잭슨이라는 도시의 한 양로원에 살고 계시는 93세 된 교인 할머니 심방을 갔다. 그 분의 이름은 버르다 베일리 였는데 아주 예쁜 웃음을 얼굴에 지니신 분이었다(거의 1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미소가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반갑게 나를 맞이하신 후 자기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This is my pastor”(이 분이 나의 목사님) 하시며 소개해 주시는 할머니가 나는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 다음 1시간 동안 영어가 서투른 나와 또 보청기를 끼고서도 잘 듣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어렵지만 정답게 대화하였다. 또 오라고 다정스럽게 초청을 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혼자 차를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신세타령이라고나 할까? “최계운, 너 여기 미시간 촌구석에서 뭐하고 있는 거냐? 신학교를 졸업할 때는 세계를 복음화 하겠다고 그러더니 지금 이 시골 교회에서 뭐하고 있니? 도시로 나가 큰 교회에 가서목회를 해야지 길도 열리지!” 바로 1-2시간 전에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헛된 낭비로만 생각되었다.
그런데 1분쯤 지났을까, 내 마음 속에서 주님께서 조용히 얘기하기 시작하셨다. “계운아, 오늘 오후에 네가 나를 보았느니라” “제가 어떻게 주님을 뵈었습니까?” “외로우신 버르다 할머니를 내 이름으로 찾아 본 것이 나를 본 것이니라”. 나는 즉시 주님 앞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말씀을 상기시키셨다.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민족은 두 편(염소 떼와 양 떼)으로 나뉘어 진다. 염소 떼는 영벌로, 양 떼는 영생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심판의 기준은 주님을 믿는 지극히 작은 자를 주께 대하듯 했느냐 하는 것이다.
염소들은 주님을 섬기는 큰 기회만을 찾다가 매일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작은 자들을 무시해서 정작 섬김의 기회를 놓쳐 버렸고, 양들은 주님을 섬긴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그저 묵묵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다가 보니 종국에 가서는 주님을 섬긴 것이 되었다.그 날 오후의 내 영혼 속의 깨달음은 그 후 나의 목회 좌우명이 되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을 섬기듯 하라!” 나는 우리가 천국에 가면 많이 놀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반대로 천국에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사람들이 많이 보일 것이라고...나는 우리 모두가 매일 지극히 작은 자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보며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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