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국국악원 박윤숙 원장과 장녀 강유선씨.
뉴욕에서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을 같이 하는 가족은 적지 않지만 한국 전통예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가족은 박윤숙 한국국악원 원장 모녀가 유일하다.
박 원장은 가야금 연주자이며 장녀 강유선씨와 차녀 강호선씨가 한국 무용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박윤숙 원장에게 강유선씨는 단순히 전통 예술을 하는 장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함께 걷기 힘든 길을 동행해준 고마운 딸이자 자신이 25년 이상 공들여온 국악원을 이끌어갈 실력과 사명감이 있는 든든한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부터 음악을 했고 맨하탄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강씨가 갑자기 한국무용을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입장에서 과연 기쁘기만 했을까? 걱정과 우려가 앞섰을 것이다.
몸이 굳기 시작한 20세가 넘어 무용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지 뉴욕이 한국무용을 하기에는 ‘변방’이라는 것을 박 원장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씨는 뉴욕에서는 현대 무용 수업을 들으면서 기본을 익혔고 방학때마다 한국으로 유학을 했다. 강씨가 사사한 스승은 한국 무용의 양대 주류 중 하나인 이매방류의 계승자 임이조 선생. 일요일에는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교회에 내려주고 자신은 절로 향할 정도로 자식들의 선택에 대해 관여 하지 않던 어머니답게 박원장은 강씨의 결정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를 했다.
“전세계 수재들이 모이는 뉴욕에서 특출난 재능과 실력이 없다면 학교를 졸업한 뒤에 반주를 하거나 레슨 하는데 만족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뛰어들지 않는 분야에서 선두가 되는 것이 현명할 수 있겠죠.” 강씨 역시 스무살이 될 때까지는 박 원장이 하는 일에 철저히 무관심하고 냉정했다. “솔직히 엄마가 미국에서 국악을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다른 일을 했더라면 더욱 성공할 수 있는 능력있는 분이거든요”
이후 강씨의 성취는 “기왕 시작했으니 뉴욕에서는 남들보다 잘하겠지” 했던 박 원장의 기대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한국일보사가 특별후원한 국악경연대회 수상 경력으로 2003년 한국의 남원춘향제에 참가한 강씨가 쟁쟁한 한국의 경쟁자들 틈에서 당당히 2등을 한 것이다. 곧이어 열린 한국국악계의 최대 경연장 전주대사습대회에서도 강씨는 당당히 수상했다. 박 원장은 “한국에서만 공부하다 온 학생이 줄리어드 학생들을 제치고 미국 음악 콩쿨에서 우승한 것이나 마찬가지” 라고 표현하며 당시의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강유선씨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서양 음악으로 닦은 기초가 한국 무용을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 것 같다”면서 “몸의 표현이나 창의성, 리듬감 등이 어려서부터 한국무용만 해온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영어가 가능한 저같은 젊은 세대가 미 주류 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려야죠. 강씨는 박윤숙 원장을 포함한 이민 1세대 문화인들이 뉴욕에 한국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과거와 같은 활동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딸들을 보며 마음 든든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박원장에게는 걱정이 남아있다. 막상 자신의 전공인 가야금 후계자가 귀한 것이다. 박 원장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가르쳐도 대학 가고나면 그만인 경우가 많다며 지금도 잘하는 학생이 한명 있어서 기대하지만 끝까지 갈지 걱정이라는 것. 강유선씨는 이 걱정만큼은 저도 마땅히 풀어 줄 수가 없다며 웃는다.<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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