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브루클린)
삼도(일본)가 미국 페리함대로 말미암아 칼잡이 막부제를 끝내고 15살 먹은 무쓰히또가 왕이 된 것은 1867년 1월이었다. 이로써 메이지유신이 시작된다. 앞선 서구문명을 따라잡기 위해 똑똑한 젊은이들을 영국, 독일, 네덜란드에 유학 보낸다. 그 가운데 이또가 있었다.
첫 내각총리이자 명치유신의 실권자요, 첫 조선 통감으로서 조선 합병을 드잡이한 인물이다.러일전쟁(1904~05)에서 이긴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해 철도와 광산을 이렇게 챙긴다. 간도협약(1909.9.4), 백두산 정계비(1712.5) 뒤로 나라땅 금이 가름되지 않는 간도는 옛날이나 그 때나 농사짓고 살던 우리 땅이다. 이 간도를 청나라에 주고 만주 철도 부설권 및 광산 채굴권을 손에 넣었다.
하루아침에 우리땅 간도와 백성이 사라졌다. 앞으로 남은 국제법 시효는 100년이 되는 2009년 9월 3일까지라는데…그렇게 깔아놓은 쇳길을 따라 아라사 대표 코코브체프와 뒷거래하러 갔던 이또는 벼락을 맞았다. 싸울아비 안중근(1879~1910), 정미7조약(1907.7)으로 군대가 강제 해산되고 내정권 마저 빼앗기자 단숨에 연해주 해삼위(블라디보스톡)로 건너가 항일 의병대를 모아 무장 투쟁에 나섰다.1906년 삼화부에서 사립학교를 세워 청소년 교육에 온 힘을 쏟았고 뒤이어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이또를 만난 그 해 함경도 경흥, 회령 등에 있는 일본 수비대에 3차례나 진공작전
을 펼친 뒤 생각했다. 나라와 겨레를 노예살이에서 살리기 위해서는 일본의 심장을 쏘아야 한다. 1909년 11명의 동지들과 같이 손가락을 끊어 하늘에 아뢰었다. 그날 만약을 대비해서 채가구에는 우덕순, 조도순 투사가 있었고 하얼빈에는 안중근, 유동하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차는 채가구를 지나쳤다.
그 날 김성옥, 김형재 투사 등이 모두 사로잡혔다. 재판중에 나는 일반 살인피고가 아니다. ‘전쟁포로’로 대하라며 일제의 죄악을 낱낱이 들추어 호통을 쳤다. 삼도는 조선의 영웅을 만들 수 없다며 온갖 꼬드김과 얄팍한 잔꾀를 부렸으나 태산같은 사나이의 기개와 절개를 꺾을 수는 없었다.
메말라 죽어가는 조국에 생명수로, 꺼져가는 민족의 혼불에 불심지로 남은 사나이, 일본 검사와 간수도 존경을 감추지 못한 사람. 장제스는 말했다. “중국인 2억명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사람 안중근 한 사람이 해냈다”고.
해방된지 63년, 이제서야 안의사의 혼백을 찾는다고 한다. 일제 앞잡이들은 나라 묘지에 모신지 오래다. 죽어서도 해방되지 못하고, 죽어서도 나라 찾지 못하는 조선 싸울아비들의 버려진 넋들이 떠돌고 있음은 이런 나라 다시 없을래라!보슬비가 내리던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한 목숨 바쳐 2,000만의 나라를 지킨 안의사에서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로 시작되는 거사 전날 밤에동지들 앞에서 읊은 ‘만세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만세, 만세, 조선독립 만세! 만세 만세 우리 동포 만세!
참으로 가슴 벅찬 외침이 아닐 수 없다. 저마다 개인 이익을 생각하여 날뛰는 한국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안중근 열사와 같은 애국자가 이 난세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해마다 이 날이 되면 그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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