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부터)프로듀서 겸 감독 유태균 ‘이스트 웨이브 프로덕션 대표, 동생 유미아 라마마 극장 디렉터, 유씨의 남편이자 역시 극장 디렉터인 빌리 클라크.
초창기 한국 연극의 선구자인 유치진 작가의 손자이자 극단 동랑레퍼터리 유덕형 대표의 아들인 유태균씨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하던 시절의 별명은 ‘맥가이버’였다.
어머니가 미국인인 유씨는 너무 튀는 외모 때문에 당시 매일 벌어지던 시위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 화염병, 유인물 등 주요 시위 물품의 운박책을 담당했던 것. 교문앞에서 학생들의 가방을 검사하던 전경들도 ‘미국인 학생’으로 보이는 유씨의 가방만은 뒤지지 않았다.
유씨는 “그렇게 가방에 화염병을 넣고 캠퍼스를 걷고 있으면 어떤 학생들은 날 보고 ‘양키 고 홈’이라고 소리치곤 했다”며 웃었다. 이스트빌리지의 유서깊은 오프브로드웨이 극장 라마마의 디렉터인 유씨의 동생 유미아씨의 외모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 남매는 정체성이나 국적, 활동 공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부모의 영향으로 선천적인 코스모폴리탄의 기질을 타고난 이들에겐 외모와 인종에 대해서 유난히 편협하고 배타적인 한국적인 시각이 간혹 부담스러울 뿐이다.
이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연극 가문의 일원으로서 일찌감치 자신의 길을 연극과 공연분야로 결정했다. 동생 유미아씨가 명문 브라운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배우로 나서는 등 ‘본연’의 길을 걸었다면 유태균씨는 영상이라는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씨는 한국에서 광고일을 하다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다시 영화를 전공했다. 서울예술대학에서 전임교수로 2003년까지 재직하다가 다시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East Wave(동랑)’프로덕션을 설립해 프로듀서 겸 감독으로 활동중이다.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일과 교직을 함께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씨는 “한국보다는 미국이 독립장편영화를 계속 만들기에는 환경이 낫다고 생각했다”며 “나중에는 한국에서도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미아씨가 일하고 있는 라마마 극장의 소유주는 47년동안 극장을 운영하며 오프브로드웨이의 대모로 불리는 엘렌 스토어 여사로 부친 유덕형씨가 뉴욕에서 연극 공부를 할 때 유씨를 양아들로 삼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오태석 감독의 조연출로 활동하는 등 뉴욕과 서울의 연극무대에서 활발히 작업했던 유미아씨는 “당분간은 남편과 함께 극장 운영에만 전념하겠지만 연극 무대를 떠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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