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들마다 감동적 스토리가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타고난 신체적 열세를 눈물과 땀으로 극복해 메달을 따낸 선수들에게는 더욱 뜨거운 갈채를 보내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선천적 신체 조건이 워낙 월등해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을 보면 마냥 부러웠다. 이 세상에는 원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친한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왔다. 무엇이라 위로를 할까? 문득 몇 해 전 아내가 암에 걸렸을 때가 떠올랐다.
날로 늘어가는 암이라는 병에는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늘 같이 작용한다. 미국민의 3명중 한 명이 일생 사는 동안 암에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 암의 원인을 조사하는 연구에 의하면 약 90% 정도가 환경적인 원인이라 한다. 유전은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의 환경을 보호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음 아내가 진단을 받았을 때 충격이 너무 컸다. 모든 것이 성공적이라는 교만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바쁘게 살면서 성공을 위해 아내를 고생시킨 것이 후회가 되었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무슨 죄가 숨어 있었던가?” 하는 죄책감으로 괴로웠다. 건강검진도 자주 배려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의사로서 다른 이들에게 너무나 창피하였다.
일단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깝게 지내던 분들이 오히려 어색해하시며 연락을 잘 못하심을 느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대해주는 분들이 좋고 편안했다. 그런가 하면 찾아 오셔서 자꾸 상황을 해석하려는 분들이 계셨다. 가령 “무엇인가 잘 못했거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병에 걸렸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한 해석들이었다.
안 그래도 죄책감에 쌓여 있는 우리에게는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 세상사를 인간이 다 설명할 수 있으랴? 환경을 망가뜨려 암에 걸리게 한 장본인은 우리 모두이다.
환자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어떠한 선입견이나 판단 없이 잘 들어주시는 분들이 감사했고 사려 깊은 사랑을 느꼈다. 무조건 “치료가 잘 될 거야” 라든지 “괜찮아 그까지 것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맹목적인 위로도 사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많은 분들은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하며 말씀하시는데 의사인 나도 헷갈리며 정신이 없었다. 신빙성을 잘 조사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추천해주신 분들이 고마웠다.
아내의 투병이 장기화하면서 지속적인 관심은 점차 사라졌지만 꾸준히 연락하시는 분들에게는 항상 진한 감동을 느꼈다. 옆에서 간호하는 배우자나 가족도 배려해주시는 사려 깊은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연락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교통편이 다음 주 언제 필요하지?”라든가 “내일 식사는 내가 가져올까?”라고 실질적 도움을 제시했던 분들이 고마웠다.
“인간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수 없는 존재” 라는 체험은 우리를 겸손하고 깊어지게 만든다. 아내의 투병으로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 얻은 것이 많다. 지금은 건강해진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옛날에는 중요하다고 붙잡고 있던 욕심들을 다 내려놓으니 너무나도 마음이 홀가분하다. 죽음과 삶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루 숨 쉬고 양식을 먹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러니 죽을 때를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악쓰고 살 때 보다 얼마나 인생의 깊은 맛과 기쁨을 맛보고 사는 것인가?”
한 시간이 새록새록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쉬움도 사라졌다.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의 삶의 연속이란 생각이 드니 어디서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올림픽 챔피언만이 챔피언이 아니다. 생각과 태도를 매일 조금씩 바꾸어서 삶의 깊이를 더하고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인생의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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