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조업계 ‘비상’… 올 들어 10만여 공장 문 닫을 판
경제성장 ‘주춤’ 업주들 공장 폐쇄 야반도주 횡행
파산 연쇄반응…사회적 소요로 이어질까 전전긍긍
먼저 회사의 회계장부를 불태웠다. 그 다음 골프클럽 회원권을 팔아치웠다. 그리고는 S-600형 벤츠를 처분했다. 이와 함께 그는 사라졌다.
중국 내 최대 염직회사다. 풋볼 경기장 31개의 규모의 거대한 대지에 4개의 공장을 거느리고 있다. 종업원 수만 4,000여명이다. 이 회사가 최소 2억 달러로 추산되는 빚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한 때 성공 스토리의 신화 같던 그 회사가 이제는 과거 역사가 됐고 이 회사 회장 타오 쇼우롱은 달아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죽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회사, 다시 말해 지앙롱 그룹의 300여 하청업자 중의 하나인 마오 요우밍의 말이다. 마오가 이 회사로부터 받지 못한 돈은 85만 달러에 이른다. 지앙롱 그룹은 마오가 운영하는 가스 회사의 연 수입의 60%를 차지했었다. “이제 우리도 종업원에게 봉급을 줄 수 없다. 파산신청을 할 수 밖에 없다.” 마오의 체념 섞인 말이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올 전반기에 중국에서는 6만7,000개에 이르는 각종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올해 말까지는 10만 개 이상의 공장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게 중국 사회과학 아카데미 의 경제학자인 카오 지안하이의 예측이다.
이처럼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사장들이 한밤중에 달아나는 이 같은 스토리는 일상적인 게 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야반도주 스토리들은 지난 10년 내에 중국의 제조업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는 사실을 반영하면서 실업대란의 우려를 점증시키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 발생 이전에도 중국의 각종 공장주들은 고전을 하고 있었다. 인건비가 올랐다. 원자재 값이 앙등했다. 중국의 유안화가 평가 절상됐다. 각종 법적 조치가 까다로워지고, 세 부담이 늘었다. 거기다가 환경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조치들이 계속 추가됐다. 이런 것들이 공장 경영을 어렵게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찾아 온 게 신용경색이다. 중국 상품에 대한 서방 각국의 주문이 격감했다. 은행들은 공장에 대한 대부를 줄였다. 많은 공장들이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산업생산 하락은 중국경제가 최근 들어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주원인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3/4분기에 연율 9%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5년래 최저 수준으로, 경제 분석가들의 당초 전망을 훨씬 및 돌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GDP는 11.9%가 늘었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전 세계적 성장을 가져올 남은 엔진마저 상당히 빠르게 식고 있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안정적이고 빠른 성장을 유지함으로써 실업률 상승을 통제하고 또 정치적 사회적 소요가 가져오는 위험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달 북경당국은 많은 수출업체에 세제 특혜를 주었고 은행들의 소기업에 대한 여신정책을 완화하는 등 경기부양을 가져올 일련의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업계와 분석가들은 그다지 낙천적이지 못하다.
“정직하게 말해 정부당국이 현 단계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든 흐름을 뒤바꿀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부는 여기저기에서 일어난 불을 끄기에도 벅차다.” 제지앙 대학의 경제학자 예 항의 지적이다.
최근 수 주 간 아닌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많은 불이 났다. 그리고 그 불은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다. 상하이 남쪽의 제지앙 성에서만 6개의 대기업이 파산을 했다는 게 예 교수의 말이다. 그 중 하나가 지앙롱 그룹이다. 중국의 최대 재봉틀 메이커인 페이유 그룹, 최대 제약회시의 하나인 제이지앙 이신 약품 등도 그 파산 대기업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이 여섯 명의 업주 중 한 명은 파산과 함께 자살을 했다. 다른 한 명은 경찰에 체포됐고 나머지 4명은 달아났다. 파산 연쇄반응사태가 예상되면서 머지않아 더 많은 업주들이 달아나고나, 자살하고나 하는 일도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어지는 예 교수의 말이다.
잇단 공장폐쇄 진앙은
수출 전진기지 광동성
공장폐쇄의 물결이 먼저 일기 시작한 곳은 30년 전 개혁개방과 함께 가장 먼저 시장경제가 도입된 광동성이다.
이 지역은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중국 수출의 전진기지다. 그러나 최근 2년 동안 셴첸, 동구안 등 이 지역 도시들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환경을 깨끗이 하라는 당국의 지침이 떨어졌다. 거기다가 고부가 가치 상품생산에, 또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를 전환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게 됐다.
노동집약적인 업종, 예컨대 신발, 의류, 가구제조업체 등은 더 이상 환영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당국의 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중국의 수출은 계속 호조를 보였다. 예외가 지난 해 간은 기간에 비해 수출이 3% 줄어든 의류 등 몇 개 업종이다. 그러나 많은 수출업자들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마진이 준 것이다. 또 적지 않은 업자들은 주문 감소에 직면해 있고 또 유동성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유럽시장도 말이 아니다. 최근 두 달 동안 유로화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시장 점유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한 가구 제조업자의 비명이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업종은 완구업계다. 3,600여 업체, 그러니까 전체 완구 제조업체의 절반이 문을 닫은 것으로 정부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은 규모가 작은 업체다. 그러나 지난 달 초대형 완구제조 업체인 스마트 유니온 그룹은 3개의 공장을 폐쇄했다. 그 결과 8,700명의 실업자가 생겨났다.
잇단 공장 폐쇄와 함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시위에 들어간 것이다. 광동성 정부는 4백만 달러를 긴급 방출, 밀린 임금을 지급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은 그 혜택에서 제외돼 있다. 타향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실업수당 수혜자격 조차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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