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그의 친구 울라와 버니는 30년 전부터 마요르카라는 스페인 남단의 섬에 빌라를 갖고 있는데요. 한 번은 부활절에 저희를 초대했습니다. 마요르카는 어찌나 독일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드는지 상점이던 음식점 혹은 어디를 가던 독일어 하나면 다 통하기 때문에 독일 섬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독일 북부 사람들은 항상 침침한 날씨 때문에 날씨가 따듯하고 해가 많은 곳으로 많이 다니거든요.
마요르카 서남쪽에 위치한 팔마에 도착하여 차를 빌려 타고 그들의 별장이 있는 동쪽 해안으로 갔습니다. 별장은 바닷가에 있지 않고 안으로 한 15분 정도 차로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섬에 집을 하나 구한다면 반드시 바다가 보이는 곳을 정할 것 같은데 그 사람들 별장은 올리브밭에 둘러싸여 있고 좀 언덕진 곳에 있기 때문에 멀리까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습니다. 양 사방에 있는 올리브밭 뿐만 아니라 마당 한 옆에는 상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샐러드 야채, 피망, 고추, 보랏빛이 나는 아티쵸크(artichoke-열매 같은 꽃 부분을 먹음) 등 소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라는 동네 여자가 항상 와서 집을 치워 주고 울라나 버니가 없을 때도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주기 때문에 그런 집을 갖고 있는 게 가능하지요. 필요할 때면 간단한 음식까지 장만해 준다고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항상 돈을 아껴야 하는 사람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절 점심으로 그 주변에 별장을 갖고 있는 여러 독일 사람들이 초대되어 왔습니다. 대부대가 앉을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이 장식되었고 이른 아침부터 버니는 마당에 있는 돌로 된 오븐에 불을 지펴 양고기를 통째로 구울 준비를 하고 마리아와 울라는 야채를 비롯한 다른 음식 준비를 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양고기를 굉장히 고급으로 치고 특히 부활절 때 많이 먹는 것을 알고 계셔요? 양고기는 올리브기름을 문지르고 소금, 후추뿐아니라 밭에서 뜯은 오레가노(oregano-양념)와 로즈마리(rosemary-양념)는 한줌 씩 군데군데박아 넣었습니다. 또 틈이 있는 곳마다 마늘을 빠지지 않도록 끼워 넣었답니다. 그러한 허브(herb-양념으로 쓰이는 적은 식물)와 마늘이 고기의 노릿한 냄새를 없애 주고 고기의 맛을 살게 해 주지요. 돌 오븐의 내부가 따끈히 달아오르자 쇠꼬챙이에 끼워 넣고 서서히 돌려가며 굽기 시작 했습니다. 오븐 가까이 접근하여 들여다보니 안에서 뜨거운 열이 얼굴로 확 퍼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고기에는 색이 돌았고 점심때가 가까워졌을 때쯤에는 양고기는 군데군데 거뭇거뭇하고 먹음직스런 색과 윤기가 돌기 시작 했습니다. 그 아래 받쳐놓은 넓직한 그릇에는 고기에서 떨어진 먹음직스러운 국물과 기름이 고여 있었고 고기에 군데군데 박아 넣은 로즈마리 줄기가 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보기에도 벌써 군침이 돌았고 그 가까이에 가서 서 있어도 맛있는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습니다. 순간 화악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남자들 두 명이 고기 덩어리를 들어내 커다란 나무 테이블 위에 얹어 놓았고 모두들 둘러서서 군침을 흘리며 내려다보았답니다. 국물이 고인 그릇도 옆에 갖다 놓고 폼을 잡고 칼을 갈고 서브할 준비가 되기까지 15분,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기 식는다구요? 천만에 말씀.
워낙 속까지 뜨거웠던 고기 덩어리라 그렇게 쉽게 식지 않습니다. 또 아주 중요한 것은요 열에 의해 속으로 모였던 수분이 그렇게 내놓고 있는 동안에 서서히 살갗 쪽으로 스며듭니다. 그래야 고기 살이 긴장을 풀어 고기가 훨씬 연하기 때문에 좀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중요합니다. 고기 덩어리 굽게 되면 잊지 마셔요. 우리는 모두 접시를 들고 버니가 잘라 주는 고기를 2-3쪽씩 받아 들고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에 와 앉았습니다. 접시 위의 고기 주변에는 약간의 기름기와 고기에서 나온 거므스름한 국물이
섬처럼 흘려져 있었습니다. 간이 적당히 배인 연한 살고기를 한쪽 입에 넣고 혀에 닫는 그 고소한 맛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눈을 지긋이 감고, 으음...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 맛을 칭찬하느라 모두들 떠들썩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처럼 이렇게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쉬 가까워지게 하는 것도 드물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가 만든 버섯, 감자, 완두콩을 넣고 만든 달걀찜은 처음 보는 음식이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것을 토르티야라고 부르는데 후라이팬에다 서서히 불에 익히기도 하고 그렇
게 뚝배기 같은 그릇에 담아 오븐에 굽기도 한답니다. 고기와 어울리게 스페인 산의 붉은 포도주가 서브되었고 몇몇 여자들은 흰 포도주를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한참 후에는 모두들 접시를 들고 나가 고기를 몇 점씩 더 저며 들고 들어왔지요. 서양 사람들은 그렇게 먹으면서 얘기하면서 한없이 시간을 끈답니다. 후식을 먹고 마당으로 나왔을 때는 거의 4시가 가까웠습니다.
어휴, 우리가 먹으면서 하루를 다 보냈네... 우리는 마리아가 대신 지어주는 울라와 버니의 농사를 구경하기 시작하였고 몇 사람들은 올리브 밭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점심은 손님 접대하느라 애쓴 울라와 버니를 위하여 제가 맡아서 요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멀지 않은 동네의 생선 집에 가니 도라도라는 생선이 유난히 싱싱해 보여 4마리를 골라
샀습니다. 남자들을 위해서는 좀 큰 것을 고르고 소식가인 제 것으로 작은 것을 골랐습니다. 야채는 모두 그 집의 농사지은 것을 뜯기로 했지요.
알루포일을 각 생선의 위와 아래를 덮게 잘라서 피고 우선 큼직한 딜(dill)을 한 가지씩 놓았습니다. 딜은 아주 싱그럽고 향긋해서 생선 요리에 많이 쓰는 것 알고 계셔요? 그 허브는 생선뿐만이 아니라 샐러드에 넣어도 아주 좋습니다. 꼬옥 한번 써 보셔요. 그리고 생선의 길이만큼 소
금, 후추, 고추가루인 카얀(cayenne)을 좀 뿌린 후 그 위에 생선을 올려놓았습니다. 생선의 배 안에도 소금을 조금 뿌리고 저민 레몬을 두 쪽씩 끼워 넣은 후에 생선 윗쪽에도 아래쪽과 똑같은 양념에다 마늘 가루까지 조금 추가하여 뿌렸습니다. 버터를 한쪽씩 저며 얹고 올리브기름을 흘려 뿌리고 다시 그 위에도 큼직한 딜을 한 가지씩 얹었습니다.
어때요. 듣기만 해도 맛이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알루포일로 위를 덮고 가장자리를 아래의 포일과 함께 여미었습니다. 그리고 오븐을 370도로 달구기 시작했습니다. 생선이 익는 시간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한 30-35분 정도라 모든 다른 준비가 다 되어야 하거든요. 울라는 샐러드 준비를 하고, 감자가 없으면 못 사는 독일 남자들을 위해 푸짐한 양의 감자가
벌써 끓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데서 보기 드문 보랏빛이 나는 아티쵸크를 다듬었습니다. 꽃 바로 밑 부분의 줄기는 껍질만 벗기면 아주 연하고 맛이 있는 것 알고 계셔요? 그래서 그 부분의 1인치 정도를 자를 때 꽃에 붙여 두었습니다. 꽃을 다듬어서 작은 것은 4쪽, 큰 것은 6쪽을 내어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볶았습니다.
식탁에 앉아 알루포일의 윗부분을 열었을 때 바다 냄새와 딜의 싱그러운 향기가 퍼졌습니다. 참, 그렇게 익힌 생선은 반드시 포일에 싼 채로 접시에 담아 내놓아야지 절대로 포일을 치우고 접시에 옮겨 담으시면 안됩니다. 생선에서 나온 국물이 많기 때문에 그냥 두어야지 좋거든요. 제가 처음 그렇게 하는 요리 법을 배웠을 때 손님에게 포일에 싼 채로 내어 놓는 것이 마음에 걸리어 그것을 벗기고 접시에 옮겨 담아 아주 완전히 스타일과 맛을 구긴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도 빠져나가지 않은 수분으로 인해서 생선살은 말할 수 없이 보드랍고 딜과 레몬의 향기와 카얀의 약간 매운기가 적당히 맛을 자극 하거든요. 그러면서도 생선의 맛을 그대로 살린 요리 법입니다. 윗쪽을 먹은 후에 서양 사람들은 준비해둔 빈 접시에 뼈를 옮겨 담고 그 후에 아래 부분을 먹는 답니다. 저는 남들과 먹을 때는 그렇게 하고 혼자 먹을 땐 우리 식으로 생선을 뒤집어서 뒷부분을 먹는 답니다. 참 버릇 못 고치지요?
한없이 먹은 부활절 잔치 후에 부담이 안 가고 아주 산뜻해서 좋은 점심이었다고들 하였습니다. 재료가 그렇게 싱싱하면 맛없게 나올 리가 없지요. 점심식사 후에는 우리끼리 차를 타고 그 섬의 수도인 팔마에 가서 돌아다니다가 늦으면 거기서 저녁을 먹고 오기로 하였습니다. 이왕 거기까지 갔으니 속속히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지만 전날의 손님 접대로 피곤한 울라와 버니를 쉬게 하기 위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계속>
마당에 세워진 오븐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손비다’ 호텔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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